"돌이켜 보면 80년대가 가장 바빴던 것 같습니다. 그 때는 한참 운동하던 시절이라 운동권에서 나오는 인쇄물들도 꽤 많았죠. 정보과 형사들이 매일같이 드나들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한밤 중에 몰래 찍어주기도 했죠. 그 때는 책도 많이 찍고 또 많이 읽기도 했어요."
23일 '세계 책의 날'을 맞은 서정환 신아출판사 사장(69)은 "인터넷으로 '토닥토닥'하는 세상이 편해지긴 했지만, 책과 너무 멀어졌다"며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했다.
1970년 2월 7일 '신아문예사'로 문을 열었다. 월급도 없는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다가 사진에 취미가 있어 사진을 인화하는 일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종이장사'로 돌아왔다. 어떤 지도 모르고 젊은 시절 시작한 일. 1984년 '신아출판사'를 새로 창립해 여덟번 정도 옮겨다니다 현재 위치인 전주시 태평동에 정착했다.
"80년대는 책은 많이 읽었지만, 실질적으로 출판의 자유가 없던 때였죠. 민주화가 되면서 우리가 처음으로 등록한 잡지가 90년에 나온 월간 「소년문학」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산골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담임선생님이 만들어 준 문집에 내 글이 실려서 그걸 들고 학교에서 집까지 뛰어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애들한테 꿈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92년 「수필과 비평」, 94년 「문예연구」를 차례로 창간했다. 수필을 '변두리문학'으로만 취급하던 시절, 「수필과 비평」은 평론을 붙여 수필의 위상을 높였으며, 전국적으로 500여명의 수필가를 배출해 수필의 저변 확대를 이끌었다. 60호를 낸 종합문예지 「문예연구」는 중앙으로부터 두차례 우수문예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역에서 출판사 이름을 가진 곳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원고료를 주며 직접 기획출판을 하고 서점에 책을 내는 곳은 신아출판사가 유일하다.
2006년에는 2004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이름을 따 '황의순문학상'도 만들었다. 올해가 4회째. 서사장은 "출판사를 하면서 아내와 동업을 한 셈"이라며 "뻔히 안팔리게 생긴 일을 하는 데도 군소리 없이 내가 하는 대로 지켜봐준 아내에 대한 보답"이라고 했다.
그는 지역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지역 문인들의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실비만 받고 출판해 주는 일이 허다하다. 때로는 공짜로 책을 내주는 경우도 있다. 책 한 권 내기 쉽지 않은 지역 작가들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 그는 "지역에서는 작가가 곧 재산"이라고 덧붙였다.
서사장은 순창 출신으로, 1995년 「문예연구」를 통해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