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록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올해 '디지털 삼인삼색'은 칸느와 베를린 등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아시아 감독들을 선정했다"며 "아시아 감독들로 시작했던 '디지털 삼인삼색'의 출발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이를 통해 '디지털 삼인삼색'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올해 '디지털 삼인삼색 2009'에 초대된 감독들은 현재 전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아시아의 대표 감독 3명이다.
1997년 첫 장편 극영화 <수자쿠> 로 칸영화제 사상 최연소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7년 칸영화제에서 <너를 보내는 숲> 으로 '심사위원 대상'에 선정된 가와세 나오미(일본), 지난해 전주영화제에서 9시간에 달하는 걸작 '엘칸토에서의 죽음'을 선보이고 베니스영화제에서 오리종티 부문 대상을 수상한 <멜랑콜리아> 의 라브 디아즈(필리핀), 제1회 전주영화제 개막작 <오! 수정> 의 감독이자 지난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밤과 낮> 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은 홍상수 감독(한국). 정수완 수석 프로그래머는 "이들이 창조해 낼 세 편의 디지털영화는 전주영화제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영화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밤과> 오!> 멜랑콜리아> 너를> 수자쿠>
#1. 선택 하나-홍상수 '첩첩산중'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은 홍상수 감독(48)의 <오! 수정> 이었다. 그리고 10회를 맞는 올해 그는 '디지털 삼인삼색'으로 전주를 다시 찾는다. 오!>
장편과 필름으로만 작업을 해오던 그가 전주영화제를 통해 단편과 디지털이란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는 "전주영화제가 아니었으면 없을 기회지만,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늘 하던 일을 한다는 자세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많은 만남들 속에서 스스로 힘들어지고 쓸데없는 욕망으로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렸습니다. 만남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작업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매개임은 틀림없습니다."
'첩첩산중'은 관계의 미묘함을 그린 영화. 사람들의 관계가 망가지는 것은 사람들 마음 밑바닥에 있는 형이상학적 욕망때문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나 홍상수인데, 너 다음주에 뭐하니? 너 나랑 단편 한편 안찍을래?"라는 말로 이선균을 캐스팅한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
이선균을 비롯해 문성근 정유미 김진경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이들을 캐스팅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연료로 10만원 밖에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디지털 삼인삼색' 제작발표회에서 이선균은 "통장을 확인해 보니 10만 원이 들어와 있었다"고 했으며, 홍감독은 "돈만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응수했다.
극 중 배경을 전주로 설정, 실제로도 전주에서 촬영했다.
역시 10만원을 받고 출연한 문성근은 "한국영화의 환경이 좋지 않은 지금, 디지털 영화 활성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감독은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 1997년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로 로테르담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강원도의 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 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밤과 낮> 으로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날카로운 유머와 풍자가 홍감독 특징이다. 밤과> 극장전> 여자는> 강원도의> 돼지가>
#2. 선택 셋-라브 디아즈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
지난해 전주영화제에서 9시간짜리 <엔칸토에서의 죽음> 을 선보였던 라브 디아즈 감독(51). 그는 "올해는 8시간짜리 영화 <멜랑콜리아> 를 상영할 계획"이라며 "사람들은 내가 아주 긴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멜랑콜리아> 엔칸토에서의>
긴 러닝 타임은 할리우드 영화 공식에 반하는 것. 제작 방식에 있어서도 그는 독립 제작 방식을 고수하며 영화를 통해 필리핀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고 사회 투쟁에 대한 구원의 빛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나비들에겐 기억이 없다' 역시 필리핀의 마린두케섬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과거 다국적 기업들이 필리핀의 여러 섬에 들어오면서 많은 이득을 주기도 했지만 그들이 떠난 뒤 더 큰 문제들이 야기했던 현실을 반영, 필리핀의 한 섬에서 캐나다 금광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경제적 테두리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내 작품들은 인생에 관해 설명하고 있으며, 나는 내 영화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고통의 사실을 탐구한다"고 말했다.
"영화를 디지털로 제작하는 이유는 감독인 내가 상업적 목적만을 추구하는 영화를 제작한다는 틀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과 함께라면 내 선택권이 훨씬 넓어지며 그 안에서 나는 충분히 자유롭습니다."
디아즈 감독은 "최근 4편의 영화를 디지털로 제작했다"며 "나는 이미 디지털 미디어의 일부분이다"고 말했다.
#3. 선택 둘-가와세 나오미 '코마'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국제평론가상을 수상하며 세계 영화제의 신성으로 떠오른 가와사 나오미 감독(40). 그는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 사상 첫 여성 감독이다.
"'디지털 삼인삼색'을 제안받았을 때 막 일본 코마 지역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한국의 고구려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 배경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코마'는 일본 전쟁 이후 일본에 남아 살게 된 한국인들의 후손과 일본인 사이의 괴리, 만남, 조화를 그린 작품. 일본과 우리나라가 닮은 부분을 짚어가며 두 나라 뿐만 아니라 크게는 아시아가 이어져 있음을 전한다. 일본 전통극 노를 보며 판소리꾼이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등 전통문화 계승의 의미도 덧대어진다.
"단편영화는 항상 도전해 보고 싶은 부분이었어요.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내가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게다가 디지털은 적은 예산과 한정된 스태프와 함께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마치 같은 동네에 존재하는 주변인의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영화는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가와사 감독. 그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매일의 경험과 그 속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끌어올 수 있는 영화의 가능성이야 말로 내가 가장 매료되는 점"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일본의 옛 수도로 고향 나라의 1300년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나라국제영화제를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