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 본적지는 새벽 산행이다.
어린 시절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향인 진안 부귀산은 사람을 안온하게 안아주는 성자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허물어지거나 키 높이 물컹한 슬픔이 다가올 때 그는 부귀산에서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떠올렸다. 자연을 향해 몸을 열었다 닫은 애잔한 감상이 그렇게 곱디 고운 시귀로 옮겨진 지 40여년 째.
자신의 손글씨로 쓰여진 이운룡 시인(71·사진)의 육필 시집 「새벽의 하산」(지식을 만드는 지식)이 출간됐다. 1집부터 9집까지 그가 손수 꼽은 73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가지런히 담겼다. 도서출판 지식을 만드는 지식이 한국문단에 오래 남을 시인을 매월 3명씩 선정, 그가 다섯 번째 주인공이 됐다. 시집을 펼쳐 들고, 오랜만에 그가 웃었다.
"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니 손글씨를 일절 쓰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아주 반가운 제의였어요. 지역에서 활동해왔던 내가 43명의 시인 중 한 명에 선정되다니. 어떤 작품도 대표시라고 내걸기가 마땅치 않아 한 편씩만 꼽았습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6·25로 폐허가 돼 버려 책·걸상도 없던 교실에서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소설을 읽어줬다. 논 7마지기가 그의 집 전 재산일 정도로 가난에 찌들어 대학교 진학을 접기도 했다. 달떡을 목메게 학교로 수시로 나른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열로 그는 뒤늦게 대학에 입학해 4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다. 그만큼 치열했다.
시상이 떠오를 때까지 몇 달, 몇 년을 기다릴 줄 아는 것도, 바닥까지 내려 앉았던 순간에도 기를 쓰며 살았던 것에 기인한다. 후배 시인과 만나면 농지거리로 "나 건드리지 마. 시 나온다.”고 하며 웃을 수 있을 만큼 여유를 갖게 됐지만, 시를 죄다 비우고, 영혼의 마른 바닥만 드러날 때까지 수도 없이 시를 길어올렸다.
"저는 다작의 시인도, 과작의 시인도 아닙니다. 시가 떠오르면 머릿 속에 담아오거나 어둠 속에 서서 또는 가로등 불빛 아래 쪼그리고 앉아 메모했다가 집에 오는 즉시 컴퓨터에 올려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할 뿐이죠. 시평론을 시작하면서 10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시를 그만두고서야 다시 시로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이젠 여한이 없습니다.”
책 발간을 기념하는 작가와의 만남은 7일 오후 6시30분 전주 교보문고의 이음 공간에서 열린다. 그의 절친한 벗인 김남곤 전북일보 사장과 이동희 전북문인협회 회장, 표수욱 전북시낭송회 회장 등 지인들이 자리를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