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전주국제영화제] 감독과의 대화-홍기선 특별전

홍 감독 "밑바닥 인생, 희망 메시지 전하고파" 조재현 "목숨 내놓고 촬영했던 기억 생생"

1992년에 상영됐던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를 두고 홍기선 감독(왼쪽)과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 조재현씨가 관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desk@jjan.kr)

"당신은 인간을 위한 신념을 가졌습니까."

 

그의 스크린이 던지는 질문이다. 새우잡이 배 선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한 평 남짓한 감방에서 수십 년 사는 끔찍한 삶을 그려낸다.

 

"이젠 달리 할 게 없어서 감독을 하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지만 "20년 전이나 현재나 고립된, 소외된 계층의 삶은 아직 갈길이 멀다"고 말하는 그다.

 

2일 오후 8시 메가박스 5관에서 열린 '홍기선 특별전'.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와 <바람이 분다>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에 그가 초대됐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배우이자 경기영상위원장인 조재현씨가 동행했다.

 

18년 전 영화를 본 소감과 함께 영화 찍게 된 동기를 묻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20여평 남짓한 비좁은 멍텅구리배(새우잡이배)에서 선원들의 맨바닥 생활을 담고 싶었습니다. 파도가 너무 심해 정말 목숨 내놓고 했어요. 보험도 안 들고 무모했죠. 아마 요즘 같으면 아무도 안 하겠다고 할 겁니다."

 

이어 홍 감독은 "1992년 사회가 민주화가 꺾이는 전환점에 있었다"며 "사회 밑바닥의 삶은 변화하지 않았으나, 그것이 묻히는 현실이 싫어 담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씨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나운서가 일기예보 오보로 수십 명이 죽었다는 멘트가 나오는데 그건 실화였다"며 "밑바닥 인생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아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폐쇄되고, 소외된 계층을 소재로 한 무거운 소재를 고집하는 이유에 관한 질문도 이어졌다.

 

"그래서 영화를 잘 안 만들잖아요"

 

홍 감독의 답변에 다소 진지했던 분위기가 와르르 무너지며 웃음이 번졌다.

 

배에서 탈출을 결심한 주인공이 탈출하지 못하는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결국 살아남은 소년을 통해 희망을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도 했다.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과 민중영화제작집단 '장산곶매'에서 활동한 이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재까지 오게 됐다"는 그는 " <바람이 분다> 는 제작지원금을 받는 대신 너무 무겁게 하지 말라는 당부로 다소 정체성이 불분명한 영화가 된 것 같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조씨는 "특히 홍 감독님은 지금까지 폐쇄된 고립된 실존 인물들을 소재로, 사회적 리얼리즘이 살아있는 날 것 그대로의 영화를 찍었다면, <너는 내 운명> 의 박진표 감독님은 실존 인물을 소재로 좀 더 대중성을 갖춘 영화를 찍는 것 같다"며 "관객들이 감독을 비교해서 살펴본다면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을 알리고 기록하는 것에서 영화의 출발이 기인한다고 보는 그의 신념이 잘 드러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