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전주국제영화제] 안 밖에서 바라본 전주영화제 10년-서동진

'경제 대박' 부담감 속 독립.예술.실험의 무대

전주에 머문 영화들에게

 

가만있자, 지금으로부터 10년의 세월이 무엇이었을까. 다들 각각의 감회와 기억들을 품고 있을 터이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의 삶을 좌우한 공통의 사회적 운명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회한과 분노로 기억해야 할 일들의 세상이었을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어쩌면 덧없는 영욕의 세월이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회상하는 이들도 있지 않던가. 열 돌을 맞은 전주영화제가 겪은 세월은 어쩌면 이런 시대였을지 모른다. 시장에 모든 것을 내맡겨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이들이 행세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계는 잊어버리고 스스로를 돌보는 데 진력하는 것만이 최고라는 복음이 세상을 제패하며, 어차피 공평한 삶을 살아가는 세계는 악몽으로 끝날 뿐이라는 흉흉한 악담이 진실이 되어버린 시대. 그렇지만 그런 시대를 조금이라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문화의 편에 있을 것이다.

 

경제를 살리자는 말에는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문화를, 눈 먼 사치쯤으로 여기는 흉계가 숨어있다. 그렇지만 조금만 곰곰이 따져보면 경제와 문화는 서로 딴 편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많은 이들에게 더 균등한 삶을 약속해주는, 더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세계를 꿈꾸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와 문화를 딴 편에 있는 것으로 여길 때, 그것은 문화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경제, 결국엔 지금 살아가는 세계를 있을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세계로 여기도록 몰아붙이는 경제를 강요하는 것이다. 전주영화제도 그런 세월의 명령 속에서 엎치락뒤치락 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몸담았던 시기의 전주영화제 역시 그런 조바심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기대를 얻기도 했었다. 그 때는 외환위기로부터 가까스로 벗어나고 닷컴경제란 열풍이 휘몰아치던 때였다.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기대로 창투며 펀드며 하는 눈 먼들이 세상을 후끈하게 달구고 영화도 그 덕을 톡톡히 보던 때였다.

 

블록버스터 영화가 하나둘 씩 세상으로 나오고 영화를 벤처사업처럼 다루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던 이들이 많아졌었다. 영화가 진실을 얘기하는 힘을 가졌다기보다는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일에 더 힘을 쏟는 것이 낫다는 이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주영화제도 그 가운데에 있었다.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서글픔이 있다. 볼품없는 영화에게까지 저물어가는 지역 살림을 맡겨야 했던 속사정은 나를 몹시 침울하게 했었다. 그리고 그럴 힘이 있다면 마땅히 그럴 힘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엊그제인가 극장으로 가는 택시를 탔을 때, 영화제를 찾아 이곳까지 온 손님에게 볼 것이 변변찮아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는 운전기사의 말로부터 나는 그 때 느꼈던 것과 같은 슬픔을 느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그다지 슬퍼할 일이 못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영화에는 아직 힘이 남아있을 것이다. 영화가 경제를 살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헛된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언어를 영화는 여전히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을 전주영화제는 무럭무럭 돌보고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전주영화제를 찾을 것이다. 봄볕이 무르익으면 문득 전주를 떠올리는 이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그곳에 가면 조금은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이곳에 다시 오겠다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주영화제가 기약했던 일일 것이다.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더 많은 희망과 함께 전주영화제는 나아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절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동진 2001~2002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문화평론가·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