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손으로, 귀로 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이지만, 이들이 삶에서 일궈내는 감동은 각별하다.
학교를 통해 졸업장을 안고, 직업교육을 통해 사회인으로 성장하면서 학생들은 '자신감'을, 부모들은'희망'이라는 선물을 받기 때문.
도내 유일의 시각장애인을 특수학교인 전북맹아학교 교장인 권현정씨(65·익산시 석암동).
선친이 설립한 이곳에서 평교사로 시작, 맹아들을 위해 '희망의 씨앗'을 뿌린 숨은 공로자다.
"눈 뜬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눈 감은 사람들은 더 살기 힘들 것이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어요. 결국 전북맹아학교를 설립하셨고, 곁에서 일을 돕게 됐죠."
그는 8세에 눈에 생긴 염증으로 시력을 잃었다. 갑작스레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은 컸지만, 그를 어둠속에서 끌어낸 것은 다름 아닌 부모. 시각장애인이라 복지에 관심도 있었고, 아이들을 좋아해 이곳에 몸 담게 되면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부모님이) 지금은 세상에 안 계시지만, 감사하단 생각 많이 하고 삽니다. 장애인들의 경우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도 주변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극복하기가 어렵거든요. 힘들어도 이곳에서 버텨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아이들이 자포자기하지 않고, 든든한 사회 일원으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섭니다."
초창기 시절 공립학교이다 보니, 시설이 열악한 데다 국가로부터 예산지원이 어려워 교사 월급도 용돈 수준에 머물렀다. 늘 미안했고,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짐처럼 남아있다고.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심지어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을 목도할 때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앞길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돕자는데 목표를 두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개설된 유치부를 포함해 초·중·고교과정으로 꾸려진 전북맹아학교 학생은 현재 54명.
"교육현장에서 묵자화된 교과서를 만드는 게 주가 되다 보니, 점자 교과서는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습니다. 역사 수업의 경우 촉각으로 표현된 교재가 없어 전라도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우리나라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이들이 몰라요."
이어 그는 "저작권이 자리를 잡으면서 교과서가 음성도서화 되기가 더욱 힘들어져, 저작권 차원을 넘어서서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제도적으로 갖춰지길 바라는 교사들도 있다"고 전했다.
경제적 자립의 길을 터주기 위해 마사지·지압, 침구술, 한방 등 직업교육도 꾸준히 열고 있다. 현재까지 이 과정을 통해 직업전선에 뛰어든 이들은 대략 30여명.
그는 시각장애인만을 안마사로 규정한 의료법은 직업 선택의 자유보다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주장하면서도 장애인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8월 그는 이 곳 생활을 마감할 계획. "당분간 쉴 계획"이라는 그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살아있는 사회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바람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