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서리맞는 국화축제 살려내는 지혜를 - 김원용

봄을 재촉했던 봄 축제들이 막을 내리고 있다. 축제가 끝나면 다시 흐지부지 되지만, 매년 도마에 오르는 게 축제의 난립 문제다. 대부분 축제들이 시장 논리가 아닌, 자치단체의 예산지원으로 경직돼 있다. 지역민이 즐기지 않더라도, 관광객을 끌어들이지도 못하더라도 자치단체들이 굳이 없애려 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포장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기존 축제는 없어지지 않고 또다른 축제가 생기면서 축제의 숫자는 매년 늘어난다.

 

호흡기에 연명하는 축제에 예산이라는 주사제를 빼낸다면 그냥 없어질 축제가 더 많은 게 현주소다. 물론 축제가 꼭 돈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역의 이미지를 높이고, 지역민들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즐길 수 있는 재료가 될 수 있는 축제라면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로만 잣대를 댈 일이 아니다.

 

이 점에서 최근 고창에서 벌어지는 국화축제 논란이 지역축제를 어떻게 봐야할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전국적 지명도를 자랑하는 고창의 대표적 지역 축제는 봄에 열리는 청보리축제와 가을에 열리는 국화축제다. 두 축제 모두 자연경관을 테마로 하고, 공교롭게 개인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아드님이기도 한 진영호씨가 주도하는 청보리축제의 경우는 경관농업과 연결돼 정부 차원에서도 주목하고 있어 달리 토가 붙지 않는 것 같다. 개인의 희생과 노력에 의해 산업화 가능성까지 열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민간주도 축제로서 전국 모델이 되고 있다.

 

성공적인 모델을 옆에 둔 같은 고장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열리는 국화축제는 왜 매년 소리가 날까. 초기에는 미당 서정주 선생의 친일문제와 연결돼 논란이 일었고, 지금은 개발논리로 지역내 갈등을 빚고 있다. 축제가 열리는 국화 밭이 석정온천지구 개발에 방해가 돼 군과 몇몇 토지주가 밭을 갈아엎고 시설물 철거에 나섰으며, 축제 위원장은 군청 앞에서 국화밭을 지켜달라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축제를 만드는 사람과 군이 왜 부딪혀야 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축제를 보려고 한해 5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는 데, 군에서 장려는 못할망정 왜 막으려 하는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축제를 꾸려가는 시군이 허다하고, 축제의 의미조차 제대로 살아나지 않음에도 연명하려고 발버둥치는 시군이 허다하지 않은가.

 

축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몰라도 온천개발 관련 토지주들과 문제가 있다면 의당 행정이 나서 조정해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순서가 옳지 않을까 싶다. 장소의 문제가 있다면 장소를 옮겨 열릴 수 있게 배려하고, 축제와 온천이 훨씬 잘 어울릴 수 있다고 토지주들을 설득해야 하지 않을까. 자치단체에서 생색낼 수 있는 축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뭉개버려서는 어렵게 키운 자산을 버리는 꼴이 되지 않을런지 염려된다. 개인의 고집도 웬만한 정도는 넘나 보다. 축제를 지키려고 자치단체에 맞서 4년째 축제를 끌어왔으니. 자치단체와 민간이 손을 잡고 더 큰 축제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사정이 그래서 더 의아스럽다.

 

고창 국화축제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라는 점이 시발점이 됐다. 미당의 대표작 '국화옆에서'를 모태로 삼았다. 오늘은 미당이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서리와 바람을 맞고 있는 고창과 미당의 국화꽃이 시처럼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으로 올 가을 활짝 피어나길 기대해본다. 그래서 관 주도의 축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