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도 유행'…그러나 창작 노력 아쉽다

KBS 드라마 '매거진 알로' 표절시비 편성 보류

여배우와 평범한 남자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스타의 연인' '도쿄 여우비' '그저 바라보다가' (왼쪽부터) (desk@jjan.kr)

'스타의 연인', '그저 바라보다가', '도쿄 여우비'의 공통점은? 지난 1년 사이 잇따라 등장한 이들 세 드라마의 공통점은 여배우와 평범한 남자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행히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제작됐고, 편성 과정에서 방송사끼리 신경전을 벌일일도 없어 별다른 잡음 없이 세 드라마는 방송을 탔다. 또 여배우와 평범한 남자의 사랑은 할리우드 영화 '노팅힐'(1999)을 대표로 이미 역사가 오래돼 딱히 '표절'을 운운할 소재도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KBS와 SBS가 볼썽사나운 신경전을 벌였다. SBS가 패션잡지사를무대로 한 드라마 '스타일'의 7월 방송을 앞둔 상황에서 KBS가 또 다른 패션잡지사 배경의 '매거진 알로'를 그보다 한 달 앞선 6월에 방송하겠다고 하자, '스타일' 측이 표절이라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애초 "내부 검토 결과 표절 혐의가 없어 '매거진 알로'를 예정대로 방송하겠다"던 KBS는 논란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19일 입장을 바꿔 "공영방송에서 그런 시비에 휘말린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일단 편성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 사실 패션잡지사를 무대로 한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표절을 운운할 수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드라마 '스타일'의 원작소설 역시 같은 소재의 할리우드 히트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에 비해 2년 늦게 출간됐다.

 

그러나 드라마 '스타일'의 제작사는 '매거진 알로'에 대해 "잡지사 생활을 통해현대 사회의 소비 트렌드 및 패션 등을 젊은이들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는 콘셉트와 인물 구도, 멜로 라인이 '스타일'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매거진 알로'의 제작사는 "배경과 직업군이 똑같다고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박했고, KBS 측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후 기획돼 동일한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일과 사랑을 다루지만 이야기가 같은 것은아니다"며 표절 논란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결국 거센 논란에 '매거진 알로'의 편성을 보류하기로 한 KBS는 "표절 시비에 대해 더 정확하게 검증작업을 벌일 것이다. 여전히 작가와 제작사는 억울해하는 측면이 강하다"면서 "소재가 같다고 표절을 주장하는 것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없다"고 밝혔다.

 

◆ 유행 타고 너도나도 같은 소재 제작어느 분야에도 트렌드가 있듯, 드라마에도 트렌드가 강하게 작용한다. 불황으로 코믹하고 밝은 내용이 각광을 받는 식의 장르적인 트렌드와 함께 그때그때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소재도 분명히 있다.

 

한동안 주춤하던 의학 드라마가 2007년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의 성공이후 '뉴하트', '종합병원2', '카인과 아벨' 등으로 이어졌던 것 역시 소재의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도 '신의' '제중원' 등의 의학 드라마가 기획, 제작 중이다.

 

갑자기 옛 영웅 바람이 불어 '쾌도 홍길동', '일지매', '최강칠우', '돌아온 일지매' 등의 작품이 지난 1년 사이 잇따라 선보인 것 역시 유행을 탄 예. 그러다 최근에는 패션지를 무대로 한 패션 피플들의 삶이 트렌드가 된 것이다. 하지만 과연 트렌드라는 이유로 모든 것이 용서될까.

 

김영섭 SBS드라마기획팀장은 "TV 드라마에서 트렌드를 무시할 수는 없다"면서도"하지만 최근의 기획들이 너무 트렌드에 얹혀만 가는 경향이 강해 안타까운 것이 사실이다. 창작과 개발의 노력은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은 "외주제작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진정한 창작 아이템보다는 일단 만화, 소설, 뮤지컬 등 다른 장르에서 검증받은 안전한 소재를 들고 오는 경우가많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소재의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양산될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이야기를 푸는 방식이라도 다르게 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있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잇따른 드라마 표절 시비에 대해 방송사의 책임을 묻기도 한다.

 

한 작가는 "새로운 소재의 드라마를 애써 기획해도 방송사에서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받는 경우를 많이 봤다. '과연 이 이야기가 될 것인가' 확신을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다보니 드라마에서 익숙한 인물 구도와 소재, 이야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