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窓] 대통령이 자살해야 하는 나라 - 권순택

권순택(문화사회부장)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갔다. 정말 '바보'처럼 갔다.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어느 이른 새벽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 커 보인다. 살아 있을 때도 컸지만 막상 떠나고 보니 무엇으로 그 공간을 채울 수 있을지 생각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애절함과 비통함, 분노와 오열, 미안함과 참회로 그 빈 공간을 채우려 해도 매워지지 않는다.

 

하나 뿐인 자기 목숨마저 내 던졌던 그의 초연한 결의는 우리로 하여금 작금의 현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엇이 누가 왜 대통령마저 자살로 몰고 갔을까.

 

뇌물수수 의혹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 앞서 여론 재판을 통한 뭇매와 난도질은 청렴과 깨끗함을 정치생명으로 내걸었던 노 전 대통령에겐 도덕적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자신을 향한 검찰의 칼끝을 방어하면 할수록 측근과 친인척, 나아가 부인과 자녀들에게 까지 옥죄어 오는 사정의 칼날을 피하기에는 권력을 버린 대통령으로선 너무 힘겨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수면위로 보이는 빙산일 뿐이다. 그 저변에는 우리 사회의 집단 가학성과 새 정권의 과거 짓밟기 악순환, 칼자루를 쥔 세력들의 앙갚음 심리 등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취임사에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겠다고 국민들 앞에 다짐했던 노 전 대통령. 그동안 최고 권력과 연결된 검은 돈의 고리는 차단했지만 30년지기인 친구와 후원자로부터 받았던 도움이 단죄 대상이 될 줄은 전혀 몰랐던 건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통념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불행히도 죽은 권력의 소망은 살아있는 권력으로 부터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철저하고 가혹하리만치 파헤치고 까발려져야만 했다.

 

줄대기에 눈 먼 국세청장이 특별세무조사를 구실로 노 전 대통령의 후원 기업인을 4개월간 이잡듯 쥐지고 검찰은 수사인력을 두배로 늘려 수개월동안 노 전 대통령 주변을 먼지 털듯 털었다는 것. 국가 정보기관 역시 억대 시계 선물 얘기를 흘려 망신주기에 일조했다. 언론 또한 연일 대서특필을 통해 여론의 심판대에 세워놓고 마침내 정치적 도덕적 사형선고를 내리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 역시 실망과 야유, 비난과 조소로 직전 대통령을 깎아 내리는데 동참했다. 심지어 한때 정치권을 기웃거렸던 K교수는 '자살하거나 재판받고 감옥에 가라'고 까지 모욕을 퍼부었다.

 

권력의 칼날과 언론의 십자포화, 국민의 돌팔매질 등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우리 사회의 집단 가학이 인간으로서 감내하기에는 한계상황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믿었던 정치적 동지와 이웃들마저 '골고다의 언덕'을 향하던 그를 외면하고 부인했다.

 

우리 모두가 '대통령이 자살하는 나라', 아니 '대통령을 타살시킨 나라'라는 역사의 비극을 연출한 공동 정범이다. 그럼에도 그는 살아남은 우리를 향해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용서와 화해, 포용과 일치를 살아있는 자들에게 당부한 것이다.

 

국민들의 가슴속에 묻힌 그의 뒷모습이 한없이 더 커 보인다.

 

/권순택(문화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