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봉하마을을 향한 애도 순례행진이 끊일 줄 모르고, 전국 방방곡곡 분향소마다 눈물의 조문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정부가 마련한 분향소보다 훨씬 많은 분향소가 시민들의 손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 서울 도심 한복판 넓은 시청광장을 철통같이 막아놓은 경찰버스 행렬, 그리고 대한문 앞 좁은 보도 한쪽에 놓인 분향소와 길게 늘어선 조문객의 모습은 묘한 대조를 이루며 애도 분위기를 더욱 처연하게 만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한 달 전쯤 자신의 홈페이지에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습니다.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고 스스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그가 죽음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고 나자 그를 지키지 못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과거 전직 대통령들이나 유명 정치인들과 비교할 때 그가 과연 벼랑 끝으로 몰릴 만큼 모욕을 당하고 부패한 정치인으로 낙인찍힐 만한지에 대한 반문과, 생전에 그를 좋아했든 그렇지 않았든 그의 정치적 목표와 진정성에 대해 대부분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추구한 것이 모두가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인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대표적 정치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는데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90년 3당 합당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했고, 매번 고배를 마시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지역주의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뚝심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까지 만들어냈다.
그는 원칙이 성공한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준 정치인이다. 대통령 임기 중에도 계속된 지역주의 타파 개혁은 아직 미완인 채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지만, 이것은 여야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지고 해결해야 할 몫이다. 그리고 지역주의 타파 노력이 저비용 고효율의 새로운 정치문화로 발전했다는 점에서도 정당한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이다.
그의 소신과 원칙은 '노사모'라는 열성 팬들의 모임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막대한 자금과 인력 동원 없이도 지지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정치가 가능한 전례 없는 모델을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를 배격한 '노무현의 도전'은 퇴임 이후 시골 고향에 내려가서도 그대로 투영돼 평범한 서민으로, 밀짚모자를 쓴 시골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새롭게 각인되기도 했다. 물론 노무현식 새로운 정치 실험은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재임 중에도 보수는 물론 진보의 공세에까지 시달려야 했고, 아마추어리즘이라는 평가절하를 당하기도 했다.
그가 없는 지금,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이 없는 사회"를 주창하면서 대한민국의 업그레이드를 시도한 그의 신념과 철학은 이제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눠 가져야 할 몫이 되었다. 정부는 국민을 아프고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살펴봐야 하고, 여야 정치권과 종교계, 시민단체들도 새로운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애도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말없는 다수, 우리 국민들이 앞장서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할 때다.
/이길형(CBS방송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