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7일 우리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구실로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지 않겠다는 인민군 판문점대표부 성명을 발표함에 따라 남북관계에 심각한 위기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화단절→육로통행 제한.차단을 골자로 한 12.1조치→개성공단 계약 무효화 등으로 점증돼온 남북 간 위기지수가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치달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한은 2006년 8월22일 한.미 을지포커스렌즈(UFL) 훈련 실시에 반발하며 "정전협정에 구속받지 않겠다"고 언급하는 등 그간 몇차례 이날 성명과 비슷한 입장을 천명했었다.
그러나 이번 성명은 구체적인 행동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
백령도 등 남측이 점유하고 있는 5개섬이 자신들의 영해 안에 있다면서 이 섬들의 법적지위와 주변수역에서의 선박 항해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됐다고 밝힌 것.
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할 경우 서해 5도에 대한 정전협정 조문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정전협정은 서해 5도를 유엔군 사령관의 군사적 통제하에 둔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남측이 서해 5개섬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해왔다.
따라서 북한의 이번 성명은 서해 5도 주변에서 이뤄지는 우리측 어로 활동 및 해상 경계활동을 해상 경계선 침범 행위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며, 최악의 경우 서해 5개섬에 대해 우리의 관할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나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셈이다.
결국 이번 성명을 통해 북측은 서해상에서 '현상'을 타파하는 도발을 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예고한 셈이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북측은 서해 NLL 주변 수역에 해안포 사격을 하는 등의 도발을 시작으로 남측 어선 나포 등으로 점점 도발의 단계를 높여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25일 핵실험에 이어 마치 우리의 PSI 전면참여 발표를 기다렸다는 듯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급격히 고조시킴에 따라 남북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이 이번 성명 모두에 '전쟁도 평화도 아닌 우리 나라의 불안한 정세'를 언급한데서 보듯 성명을 통해 전쟁 재개를 의미하는 '정전협정 무효화'를 명시적으로 천명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전쟁을 의미하는 정전협정무효화에 좀 더 다가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군사적 충돌이 실제 발생할 경우 남북관계가 전면 단절이라는 '파국'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현재 국제사회 전반적 분위기가 북한의 핵실험을 제재하려는 쪽이며, 우리 정부도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려는 입장이기 때문에 남북관계가바닥을 치더라도 반등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또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남북이 날카롭게 대치하게 된 상황에서 개성공단에 우리 국민들을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느냐는 우려가 다시 힘을 얻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 경우 개성공단 인력 철수론이 부상할 수 있다.
이번 PSI 전면 참여와 북한의 반발을 지켜보면서 전문가들은 핵실험 이후 북한과 국제사회 간의 긴장이 남북관계에서 '폭발'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로선 현 상황을 통제하고 남북관계의 상황을 관리해야 하지만 그런 일을 할수 있는 남북 당국간 협의의 틀뿐만 아니라 협의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북한 핵실험에 대한 강도높은 제재를 모색하고 있는 국제사회도 중재 역할을 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편 정부는 북한의 이날 성명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데분주한 모습이다.
청와대는 곧바로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북의 발표를 분석하고 정부의 전반적대응책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방부는 북측 성명에 대한 반박 성명을 낼지여부 등을 협의하고 있으며 통일부도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북한 내 우리 국민의 신변안전 확보 방안 등을 협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