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하면서 눈이 호사하는 즐거움을 맛봤다. 물론 기대 이상인 것도 있었고, 그 이하인 것, 말조차 꺼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실망한 작품도 있었다. 괜찮은 영화를 꼽으라면 봉준호 감독의 '마더'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4편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정도가 되겠지만 비슷한 점수임에도 소감은 확연히 다르다. 100점 맞던 아이가 98점을 맞았다고 칭찬할 수는 없으니까.
▲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SF 스릴러, 액션/ 115분/ 15세 관람가)
앞에서 말한 '100점 맞던 아이'는 '터미네이터'다. 20세기인 1984년 첫 편이 나온 '터미네이터'는 1991년 2편까지 100점 만점에 120점 주고 싶은 영화였다. 그 당시는 상상할 수도 없던 스토리와 액션이 충격적이기 까지 했고, 영상 또한 획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진 3편은 그동안 쌓아온 명성을 한 번에 무너뜨리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바람 빠진 풍선 마냥 경박한 시나리오와 유치한 액션,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유머까지 곁들여져 정처없이 떠돌았다. 그래서 이번 4편은 기대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기대하게 되는 미묘한 감정 상태에서 관람을 허락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은 100점을 줄 수는 없지만 꽤 괜찮은 영화다. 옛날의 영광까지는 아니어도 구색은 맞춘 정도랄까.
2018년 미래를 배경으로 1,2,3편의 노력 덕분에 성장한 존 코너(크리스천 베일)가 저항군의 리더를 맡아 기계와 싸우는 이야기로 '이 시대의 묵시록 부활'이라 하기엔 단조로운 면이 없지 않다. 또 그리 먼 미래가 아니어서인지 예전처럼 "와~"하는 탄성도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18년 전에 그랬듯, 이 영화는 훌륭한 비주얼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특히 카메라 워크는 보는 사람마저 어지럽게 만들 정도로 다양하고 신기하다. 영화 '트랜스포머'를 만들었던 특수효과팀과 손잡은 덕분에 CG와 진짜를 구분하기도 힘들다. CG로 합성한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보게 되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사실 4편을 보게 된 것은 '배트맨: 다크 나이트'의 크리스천 베일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가 배트맨이었다는 사실이 영화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긴 한다. 배트맨과 터미네이터가 싸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영 찜찜하다.
▲ 마더(드라마/ 128분/ 18세 관람가)
'터미네이터'에 크리스천 베일이 있다면 '마더'에는 원빈이 있다. 그가 연기를 잘 했는지 어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일단 원빈이 나온다니, 거기에 봉준호 감독과 우리 시대의 어머니 김혜자가 나온다니 믿어볼 만 했다. 사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을 당시 지인에게 범인이 누군지 듣고 난 후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결과를 알고서 보면 스릴감도 떨어지고 재미도 반감될 테니까. 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고 나면 범인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읍내 약재상에서 일하며 아들과 단 둘이 사는 엄마(김혜자)에게 조금 모자란 아들 도준(원빈)은 온 세상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날, 여고생 살인사건이 터지고 이 범인으로 도준이 지목되는데…. 변호사는 돈만 밝히고 경찰은 사건을 서둘러 종결지으며 이 모자(母子)를 도와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제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엄마 뿐. 그렇게 아들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엄마가 직접 나선다.
앞에서도 말했듯 원빈은 이 영화를 선택하게 만든 배우다. 그러나 이 영화를 있게 해준 배우는 김혜자라 할 수 있겠다. 엄마의 사랑이 광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어쩜 저리도 뻔뻔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지(연기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그런 에너지를 어디서 만들어 내는지 2시간 내내 고민하게 만든다. 그가 아니였다면 누가 저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었을까. 화면 전체를 채운 그녀의 얼굴에서 자식을 위해 사는 운명을 타고 난 엄마의 숙명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영화, 뭐라 딱히 한마디로 평하긴 힘들다. 사회풍자도 있고 해학도 있다. 주절주절 말할 수는 있지만 정리할 수는 없다. 이 영화의 중심에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런 존재고 영화는 있는 그대로 표현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