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명문' 전주고, 왜 그러나

'금품수수 의혹' 감독 돌연 사직서에 운동연습도 '따로따로'

 전주고 야구부가 감독과 학부모의 불화, 학교 측의 '뒷짐 행정'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졌다. 오모 감독(41)은 지난 26일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다. '야구 명문' 전주고 야구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장비 팔아서 급여 충당

 

 지난 20일께 이 학교 야구부 K군 어머니 김모씨는 오 감독이 지난해 12월 학교에서 구입해 준 시가 250만원 상당의 야구 장비(포수 장비 1개·야구 배트 20자루)를 스포츠용품 업체에 되팔아 돈을 착복했다고 도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지난 4월부터 학교 측에 수 차례 '감독 경질'을 요구해 왔지만, '수사권이 없다', '잘못이 드러나면 움직이겠다'는 등 사실상 학교가 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김씨가 민원을 접수하고, 도교육청 담당 장학사가 '26일까지 없어진 야구 장비를 원상복구할 것', '책임자를 문책할 것' 등을 요구한 뒤에야 부랴부랴 중재에 나섰다.

 

 오 감독은 장비를 판 것은 맞지만, 코치 급여(오 감독은 감독이 되기 전에 코치로 근무했다)를 두 달 넘게 받지 못한 상황에서 전 총무였던 김씨와 학부모회장 양모씨가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씨 등이 당장 야구 장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학교에 일단 장비를 요청한 다음 그것을 팔아 급여로 대체하고, 나중에 (장비가) 필요하면 회비로 사면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당시 코치였던 오 감독에게 월급을 못 줘 미안한 마음에 그렇게 말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그럴 줄은 몰랐다”며 "월급으로 받았다면 학부모들에게 알렸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월급을 미지급 상태로 둔 것은 명백히 본인 잘못”이라며 날을 세웠다.

 

 

 

 ◆ 로비 자금, 자발 혹은 강제?

 

 김씨가 도교육청에 제출한 민원에는 오 감독이 3학년 학부모 8명으로부터 50만원씩 400만원을 받았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오 감독은 "우리나라 프로야구 구단이 8개고, 각 구단마다 스카우터가 2명씩만 잡아도 16명이다. 대학 감독들은 더 많다. 그 사람들에게 음료수라도 대접하며 우리 선수들 잘 봐달라고 부탁하려면 250만원의 월급만으로는 부족하다. 저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둘을 키우는 가장이다”며 "학부모들도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지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는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걷었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며 "감독에게는 매달 예비비(판공비) 명목으로 150만원씩 따로 지출된다”고 말했다.

 

 

 

 ◆ 야구에도 지역 감정

 

 현재 전주고 야구부(18명)는 광주와 전주, 두 패로 갈라진 형국이다. 광주 출신 오 감독을 지지하는 광주 학부모 그룹과 전 총무 김씨와 뜻을 같이하는 전주 출신 학부모 그룹. 최근까지 선수들은 부모들의 파벌(?)에 따라 연습도 전주고와 전라중에서 따로따로 했다. 당장 코앞에 닥친 군산상고와의 전국체전 2차 선발전(6월 10일)도 차질이 예상된다. 

 

 

 

 ◆ 구조적인 문제

 

 오 감독은 이 학교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지난 1월 24일 감독이 됐다. 전임인 박모 감독도 학부모들로부터 부당하게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지난해 12월 사임했다.

 

 이번 사태는 오 감독이 코치 때 밀린 급여를 지급 받고, 대신 스포츠용품 업체에 팔아넘긴 장비를 충당하는 조건으로 마무리됐다. 오 감독은 물러나고, 김씨는 도교육청에 낸 민원을 취하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언제라도 다시 불거질 수 있다. 개인 간의 갈등이라기보다 구조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교육청에서는 일부 학교에 순회코치를 보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 운동부는 감독이 코치를 데려오는 방식이다. 감독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코치를 물색한다. 그러나 현행 제도상에는 학교가 코치에게 급여를 줘야 할 근거가 없다. 결국 운동부 학부모들에게 이 부담이 전가된다.

 

 부모들의 부담은 이뿐이 아니다. 감독이 대학이나 프로 구단 스카우터들과 접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도 모두 떠안는다. 그러나 이런 비용은 금지된 것이기 때문에 영수증 처리도 제대로 안되고, 항상 잡음의 소지를 안고 있다.

 

 한 학부모는 "운동부 학부모회 장부에는 학교 실정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기 때문에 외부에 유출되면 파장이 커진다. 그래서 인수인계할 때 파기하거나 대외비로 다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