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 2050] 남원 '푸른 옷소매' 이정희씨

미술관과 찻집의 만남…"쉼과 사색이 있는 소박한 공간"

'괜, 찮, 타, 괜, 찮, 타'며 시름젖은 어깨를 토닥거리는 공간이다.

 

한 가지 색깔과 표정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림 뿐만 아니라 자기, 탁자 등이 방문객들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영국 민요인 곡 '푸른 옷소매' 를 좋아했어요. 듣고 있으면 항상 위로받는다는 느낌이었거든요."

 

남원시 산동면에 미술관과 찻집을 겸한 가게 '푸른 옷소매'를 연 서양화가 이정희씨(42).

 

2년 전 그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내려왔다. 경기도 안성에서 차를 마실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림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감상하도록 하고 싶었고, 찻집 운영을 통해 생계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여겼다. 선천적 근육마비는 20대에 접어들면서 심해졌지만, 캔버스 앞에서는 특별한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미술 따로, 삶 따로 인 게 싫어 도심을 벗어나 자신에 관한 내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온 것.

 

그의 시도를 생소하게 여긴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땅을 샀고, 쓰임에 맞게 건물을 고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작업. 하지만 '생활이 곧 미술'이라는 그의 철학을 저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즐거운 고민에 불과하다.

 

현재 '푸른 옷소매'엔 그간 작업한 그의 그림 뿐만 아니라 가구, 자기, 의상 등 다양한 작품들이 놓여져 편안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오랫동안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구상화를 주로 그리는 그는 떡판, 옛날 도마 등 거칠고 두꺼운 나무판자를 이용해 긁어내는 작업이 대다수다. 누군가는 거칠고 투박한 맛이 살아있으면서도 섬세하다고도 했고, 또 누군가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고도 했다.

 

초반엔 작가들이 이곳을 많이 찾았지만, 이젠 이곳 사람들이 편안하게 들러 작품을 구경하고 쉬어가는 일이 많아졌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떡을 놓고 가시는 스님들도 있었고, 수소문해 귀농을 꿈꾸는 이들도 찾아왔었더랬죠. 여행 중에 우연히 드른 분들도 많구요. 어떤 분이건 간에 이곳에 드르는 인연은 모두 다 소중하고 반갑습니다."

 

남원에 갤러리가 따로 없는 현실에 비춰볼 때 '푸른 옷소매'는 사람들에게 미술작품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소박하고 대중적인 공간. 작품으로 시민들의 눈이 보기드문 호강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쉼과 사색이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진선여성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