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아버지 영전에 바치고파"

16일 제54회 현충일…6.25참전 '국가유공자' 명예 찾은 이삼구씨

아버지 고 이용문씨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7년여간 홀로 군 당국의 기록을 찾아 낸 이삼구씨가 4일 그동안 수집한 아버지의 참전과 전상 기록을 들춰보이고 있다. 이강민(lgm19740@jjan.kr)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는 전투 중 오른쪽 무릎에 수류탄 파편창을 입고 의병제대한 뒤, 동료 상이군경들과 어울려 늘상 술을 마시면서 신세한탄을 했다.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1981년, 학비라도 도움받을까 하는 생각에 상이군경 등록을 알아보러 다니던 중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가족은 관습대로 고인의 병적 등 모든 기록을 유품과 함께 태웠다.

 

2002년 임실호국원이 개원하자, 아들은 조국을 위해 싸우다 부상을 입었지만 선산에 묻힌 아버지를 호국원에 모시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아버지 고 이용문씨(51년 7월 6일 입대·완주 상관면)의 명예를 찾기 위한 아들 이삼구씨(43·전주시 중화산동)의 전쟁이 시작됐다. 하지만 아들의 싸움은 조국을 위한 아버지의 전쟁만큼이나 벅찼다. 육군본부와 국방부 등 군 관련 어느 곳에서도 입대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면사무소, 국군병원, 국가기록원, 정보공개청구까지 14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마찬가지였다.

 

수년을 허비하다 올해 4월초, 실마리를 찾았다. '이용문'이라는 입대자가 383명이라는 육군본부의 답을 얻어냈다. 그러나 본적과 생년이 일치하는 아버지 '이용문'은 없었다. 문제는 아버지가 군입대 당시 사용한 생년월일과 집에서 쓰는 것, 재적등본상의 기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발생했다. 뒤늦게 이를 알고 국방부 등에 사정해 결국 지난 4월 7일, 아버지의 군번을 찾았다. 군번을 알고, 입대사실이 확인되자 일은 쉽게 풀렸다. 병무청과 육군본부 등에 아버지와 관련한 기록을 요청해 당시 거주표(입대기록)와 전상을 당한 뒤 입원을 명령하는 연대와 사단의 명령서 등 7건을 입수했다. 지난 5월 1일에는 아버지 이름의 국가유공자(참전유공자에 해당) 증서도 받았고 꿈에 그리던 국립임실호국원 이장 권한도 얻게 됐다.

 

이씨는 그러나 단순한 참전유공자가 아닌 전쟁 중 부상을 당한 국가유공자의 명예를 아버지의 영전에 받치고 싶었다. 입원명령서 등에 '전상'이라는 증거가 뚜렷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전상 국가유공자 인정과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원하는 이씨에게 돌아 온 국가보훈처의 답변은 '병상일지가 없어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군의 공식 명령서에 아버지의 전상 기록이 있는데 왜 병상일지가 필요합니까.전쟁 통에 어떤 군인이 병상일지를 챙깁니까. 그건 국가의 몫이지요."

 

또 한번 벽에 부딪힌 이씨의 항변이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허태열 국회의원실 관계자로부터 "전공(戰功)·사상(死傷)이 불인정되는 이들이 15만명에 달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씨가 병무청과 보훈지청 등을 다닐 때 만난, "군에 가고 전쟁에 나섰는데 왜 내 기록이 없냐"고 울분을 토하는 할아버지들이 전국에 15만명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공자들은 대부분 숨졌고 살아 있어도 나이가 80~90대입니다. 40대인 제가 열정을 가지고 해도 힘든 싸움인데 어떻게 그분들이 홀로 기록을 찾고 인정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국가의 관대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아버지가 숨진 지 29년 만에 제 54회 현충일을 앞두고 국가유공자 인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보훈당국의 대처에 맞서 싸움을 벌이는 이씨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