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내내 자연과의 투쟁이었습니다. 기상대도 장마가 끝난 뒤 이렇게 끈질기게 비가 온 것은 정말 드문 일이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여관방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비와의 전쟁으로 촬영기간이 한 달에서 두 달로 늘었습니다. 아휴, 말도 못해요."
5일 오후 7시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김영혜 우석대 교수(49·바다필름 대표)의 독립영화'낯선 곳, 낯선 시간' 시사회에서 그를 만났다. 자신의 첫 장편 독립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이게 된 그는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부산 출신인 그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전주에 오면서 맞닥뜨린 문화적 충격은 다소 컸다. 무속·판소리 등이 박제화된 전통문화가 아닌 생활속에 녹아 현재진행형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신선했고, 다른 한편으론 낯설었다고 말했다.
때마침 문화운동을 하는 젊은 청년들과의'다락방 시나리오 모임'을 통해 이곳 정서적 질료들을 취합하고 각색해 이 영화를 구상할 수 있었다고. 2007년 '전북도 HD 장편영화제작지원사업' 선정되면서 비로소 제작이 가능하게 됐다.
이 영화는 남자 주인공 상우의 성장 이야기. '가을소풍(초등학교 시절)', '소나기(대학 졸업반)', '길(공연예술감독)', '두 달 후'를 통해 한 여인과 운명처럼 마주쳤고, 운명처럼 헤어진 인연의 길이 햇빛, 바람, 비와 함께 맑게 투영됐다. 하지만 개천을 길러낸 산자락과 땡볕에 바싹 약이 오른 땅 등을 담다 보니 순식간에 변화되는 기상예보로 영화촬영장소가 몇 번이나 급작스레 변동되기 일쑤여서 수십 번도 넘게 촬영장소를 찾아다녀야 했다.
그의 영화엔 물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 아버지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에서 수중 촬영을 시도한 것도 그가 물을 좋아한 탓.
"25년 전 쯤 안동에 여행갔다가 물에 잠긴 집을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물을 소재로 한 장면이 눈에 많이 띌 겁니다."
30대 중반까지는 문학평론가로, 40대부터는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감독으로 끝없는 변신을 시도하는 지금, 그는 어디쯤 왔을까. 그는 자신의 '무한도전'에 대해 자신이 의도한 바대로 연출할 수 있는 반면, 자신의 시야에 갇히는 부분도 있다며 시나리오 작업보다 영화 제작에 무게중심을 두고 싶다고 말했다.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상업적 영화의 재능은 제게 없습니다. 다만 줄거리나 액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사람 사는 자리에 대해 한번쯤 고민하게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전주영화제작소 개관이 반가운 것은 저와 같은 비주류 영화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한 이시대의 수많은 독립영화와의 조우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