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바보들의 경제학 - 원용찬

원용찬(전북대 경제학부 교수)

어느 여학생이 타이에 홀딱 반해서 눌러 살기로 작정했다. 그 곳에서는 계산 같은 것이 어수룩하고 사람 살아가는데 여유가 넘쳤기 때문이다.

 

▲ 타이 시장사람들의 엉터리 오징어 셈법

 

그녀를 매혹한 것은 타이사람들의 오징어 셈법이었다. 타이에서 오징어 한 마리는 거기 돈으로 30바트인데 한 마리를 사면 30바트이지만 세 마리 한 묶음짜리를 사면 100바트라는 것이다. 오징어 세 마리는 값은 다 쳐주어도 3×3=9이고 90바트다. 아무리 생각해도 10바트를 깎으면 깎았지 10바트를 더 줄 이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다. 한국에서라면 80바트로 내려 깎아도 시원찮을 텐데 타이 사람들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단다. 그냥 100바트를 내고 사간다.

 

인간세계는 계산에 능통하고 모든 것을 수량화하는 것으로만 되어 있지 않다. 인간 존재의 절반은 계산의 천재를 요구하고 있겠지만 절반은 노래를 못 부르는 음치처럼 계산에 어수룩한 바보들의 산치(算痴)를 요구한다.

 

▲ 시장터에서 삶을 사랑하는 행복한 인디언

 

멕시코시티의 큰 시장 한 그늘진 구석에 나이든 인디언이 있었다. 그는 그 앞에 20줄의 양파를 매달아놓고 있었다. 시카고에서 온 어떤 미국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다

 

"양파 한 줄에 얼마요?" "10센트입니다."

 

"3줄은 얼마요?" "30센트입니다."

 

"그래도 깎아주지 않는군요." 그 미국인이 말했다. "양파 3줄에 25센트에 주실래요?"

 

"아뇨."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여기 있는 20줄 전부는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20줄 전부를 팔지 않을 것입니다."

 

"안 판다고요? 당신은 여기에 양파를 팔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나는 내 삶을 살려고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 좋아합니다. 나는 햇빛과 바람에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는 서로 인사하고 담배를 태우며 아이들과 곡물에 관해 얘기하기를 좋아합니다. 나는 친구를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것들이 내 삶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모든 양파를 손님 한명에게 다 팔아버린다면, 내 하루는 바로 끝이 납니다. 그럼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 계산하지 않고 신념대로 살아갔던 바보

 

우리들의 시장경제는 똑똑한 천재를 원한다. 치열한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바보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 사회 또한 홍당무를 눈앞에 달고 질주하는 말처럼 효율성과 경쟁을 앞세워 속도를 높이기만 했다. 그러다 우리는 잠간 멈추었다. 긴 숨을 쉬고 주변을 둘러보니 낯선 풍경뿐이었다.

 

뻔히 떨어질 줄 알면서 신념대로 행동하다 손해만 본 사람, 기득권의 성역을 벌집처럼 건드렸다가 상처만 입은 사람, 그래도 주류에 대항하여 서민들에게 몫을 돌려주려고 애썼던 사람, 전략과 방법은 서툴렀다 해도 뜨거운 열정을 우리에게 안겨준 사람이, 끝내 바보짓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진정한 바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시장은 계산을 통한 즉각적인 교환체계다. 비시장경제의 따뜻함과 인간적 아름다움, 삶의 깊이가 끼어들 여지를 애초부터 주지 않는다. 천재만이 살아남는다. 시장의 천재가 비시장경제의 호혜와 바보들을 블랙홀처럼 빨아 당기면서 우리들 삶도 영악해졌다.

 

오늘 우리들은 바보들의 행진이 다시 시작되고 있음을 본다. 서툴게 값을 부르고 기꺼이 돈을 치르는 오징어 셈법이나, 황혼녘에 빈 광주리를 그때서야 비우며 내일의 사랑에 가슴 설레는 인디언 바보들이 인간의 원천적 향수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