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북이 달린다(코미디, 액션/ 117분/ 15세 관람가)
일본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2006)' 때문이었는지 '거북이 달린다'는 개봉하기도 전에 내용을 다 알아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제목에 거북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 뿐, 스토리도 주인공도 전혀 달랐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굳이 제목을 왜 이렇게 했을까' 싶을 정도로 '헛다리'를 짚게 만들었다. 물론 제목만으로는 극장을 찾게 만드는 매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 그렇다 할지라도 '거북이 달린다'는 감칠맛나게 재밌는 한국영화였다.
한국 경찰은 말도 안되는 과학 수사와 근무태만, 비리의 온상인 곳으로 묘사돼 있다. 영화 '추격자' '마더' '강철중' '살인의 추억' 등 많은 영화에서 보여진 이미지와 비슷하다.
국민 경찰 조필성(김윤성)도 그에 못지 않다. 필성은 시골마을 예산의 형사. 다섯 살 연상의 마누라와 살면서 기 한번 못 펴본 신세다. 하는 일은 소싸움 대회 준비요, 특기는 뇌물 챙겨먹기. 무능하기로 따지면 둘째라면 서럽다.
소싸움 대회를 눈 앞에 둔 어느 날, 필성은 유력한 우승 후보인 소 '태풍'이 기운 빠져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마누라 돈 300만원을 훔쳐 상대편 소에 올인한다. 결국 감기몸살로 우승을 내준 '태풍'이 덕분에 1800만원을 딴 기풍은 마누라에게 큰소리 칠 생각에 목이 메이지만 기쁨도 잠시. 몇 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탈주범 송기태(정경호)가 마을에 숨어들고, 필성의 돈 가방을 빼앗아 달아난다. 경찰의 명예, 자존심 그리고 돈을 찾기 위해 필성은 달린다.
영화는 김윤석의 전작 '추격자'의 코믹 버전이다. 날카롭고 오싹한 느낌이 '추격자'의 김윤석이었다면, '거북이 달린다'의 그는 나사가 10개쯤은 풀려나간 눈빛이 인상적이다. 특히나 잘생기고 멋진 탈주범의 정경호와 나란히 놓고 보면 바보 같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더욱이 자기 돈까지 들고 도망갔으니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 완전히 열 받은 거북이와 꾀 많은 토끼의 레이스가 흥미진진하다. 이 정도가 되면 제목이 왜 '거북이 달린다' 가 됐는지 금세 유추가능하다.
영화를 제작한 씨네 2000의 이춘연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시나리오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모든 것은 기본이 중요하고, 영화의 기본은 시나리오라는 것. 모든 것을 경험해본 기성 감독보다는 모든 것이 처음인 신인 감독을 좋아한다고 했다. 현장에서 1부터 100까지 모든 것을 시도해 보는 자세가 좋은 영화를 만드는데 필요하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거북이 달린다'는 제작자의 의견이 고스란히 담겼다. 한국 영화의 기본을 따라가면서도 독특한 유머가 섞여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기본이 됐고, 신인감독의 무한한 상상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충무로의 명배우 김윤석이 연기가 맛깔스럽게 녹아나 근래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 가장 높은 만족도를 자랑한다.
사실 '왜 이 영화를 봐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이것 저것 따질 것도 없다. 현대판 '토끼와 거북이'이야기의 승자는 누구나 궁금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