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칼럼] 품위 있는 사회를 위하여 - 윤찬영

윤찬영(전주대 사회과학대학 교수)

최근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에너지는 모욕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모욕감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느낌이기 때문에 이것을 느꼈을 때 가만히 있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 동안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연쇄살인범들의 범행동기는 모욕감이었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모욕감으로 세상에 대하여 처절한 앙갚음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자신을 죽이는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 서거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가 그 예이다. 인터넷에서도 유난히 '굴욕'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모욕은 언어와 행동의 배설물과 같다. 배설하는 자는 쾌감을 느끼겠지만 그것을 받는 자는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러니까 살인 아니면 자살을 택하지 않겠는가?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욕을 당했을 경우, 그 속이 상하는 것은 이루 표현하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모욕주기 또는 망신주기식 수사, 그것에 편승하는 보수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비판했다. 그것이 결국 거대한 추모열기로 이어졌던 것 같다. 또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나섰던 진보진영의 주경복 교수의 이메일을 모두 뒤지고, 광우병 관련 보도 관련하여 MBC PD수첩 관계자의 7년치 이메일을 공개하는 수사는 모욕주기의 전형이다. 그러나 현재 집권세력은 오히려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모욕이라고 보고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모욕이라는 것이다.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찼으니 당연한 얘기이다.

 

동물과 달리 명예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모욕은 상대를 공격하여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일종의 생존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전략을 구사하면 자신도 타인에 의해 모욕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모욕을 주는 경우를 피하는 것이 상생하는 현명한 방법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의 히브리대학 철학교수인 아비샤이 마갈릿은 이러한 모욕이 없는 '품위있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꼽는다. 그는 모욕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모욕 없는 사회가 곧 품위 있는 사회라고 설파한다. 특히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가 품위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복지제도조차 사람을 모욕하는 제도라고 비판한다. 사회복지제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존재로 폄하되는 낙인을 수반하는 한 사회복지제도조차 인간을 모욕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래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기 전에 먼저 품위 있는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감세 등 혜택을 받고 권력을 누리고, 없는 사람들은 잘해야 비정규직, 아니면 정리해고, 실업, 빈곤, 무주택 등의 상황에서 살아야 한다면, 분명히 우리사회는 품위있는 사회와 거리가 멀다. 지방민, 여성, 장애, 고령, 심지어 외모 때문에 우리는 모욕적인 차별을 당하며 산다. 개인에 의해서, 제도에 의해서, 권력에 의해서 끊임없이 모욕을 주는 사회는 인간적 품위가 없는 사회이다.

 

장관이나 여당 국회의원이 국민들에게 막말을 해서 모욕을 해놓고서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모욕죄로 처벌하겠다는 이 나라는 세계적으로 스스로 망신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을 모욕해놓고도 잘못을 모르고, 그것을 지적하는 상대방에게 오히려 모욕죄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인격장애이다. 정신보건법에 의해 강제입원 조치가 필요한 환자들이다. 품위있는 사회는 고사하고 모욕을 주었을 때,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의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윤찬영(전주대 사회과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