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전통문화의 뿌리를 조선시대와 연결시키는 것으로 볼 때, 조선 8도의 자연과 물산, 인물 등이 정리돼 있는 「여지도서」 번역이 우리 역사를 복원하고 창조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번역에 한학이 아닌, 한국사 특히 정치사와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 등 조선후기의 다양한 전공자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여지도서」 번역본이 한국학의 수원지(水源地)가 될 것입니다."
본문만 200자 원고지 6만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마흔에 시작한 번역 작업은 마흔여덟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여지도서(輿地圖書)」 번역 연구팀의 연구책임을 맡고있는 변주승 전주대 역사문화콘텐츠 전공 교수(47·한국고전문화연구원 부원장). 이번 작업을 주도하며 번역본 50권 중 전라도와 경상도지역에 해당하는 15권을 직접 번역한 그는 "시간과의 싸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했다.
"한문 번역은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특히 공동번역은 번역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세심하고 끈기있는 교정 과정을 반복해야 하죠. 꿈에서 나타날 정도로 하루 24시간 내내 모든 신경을 이 곳에만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변교수는 "고전자료를 번역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든 작업"이라며 '빈틈없고 정확한 한문 독해'와 '구조적 역사 이해' '아름다운 한글 사용'이라는 번역 3대 원칙을 세워놓고 번역팀과 매월 한두차례씩 3박 4일 일정으로 완주군 천호성지에 있는 천주교호남교회사연구소에서 합숙하며 밤을 새웠다고 말했다.
번역 수준을 높이기 위해 호남의 대표적인 한학자 고 산암 변시연 선생과 대전의 아당 이성우 선생,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등으로부터 자문을 받기도 했다. 산암 선생은 변교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여지도서」의 모든 항목들은 문화콘텐츠로서 정보화가 가능합니다. 흑백으로 된 「여지도서」 영인본 지도 353개를 채색 가공 작업을 통해 컬러지도로 바꿔 수록하고, 한자로 나와있는 지도의 지명을 한글로 옮긴 것 역시 성과입니다."
변교수는 "인명정보, 지명정보, 특산물정보, 지리정보, 조선시대 공공기관 DB, 조선시대 지방 성씨 DB, 누정 정보, 한시 DB 등 종합정보시스템이 가능하다"며 "특히 북한 지역에 대한 조선시대 종합 지리지 정보는 향후 통일을 대비한 정보망 구축으로서의 기능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라도편'은 총 4권, '전라도 보유편'은 총 3권으로 경기전 상량문 내용, 조선시대 진상품이었던 고산 곶감, 삼례역의 중요성 등 흥미로운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있다.
변교수는 「국역 여지도서」가 지역 출판사인 전주시 경원동 디자인흐름(사장 한명수)에서 출판된 것을 강조하며, 완판본의 고장으로서 맥을 잇는 것과도 같다고 덧붙였다.
변교수 연구팀은 2004년에도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조선시대 심문 기록인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번역 및 역주 과제'(연구비 10억5000만원)에 선정됐다. 현재 200자 원고지 12만매 분량의 번역을 마친 상태로, 번역본은 2011년 '전주대 고전국역총서2'로 출판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