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당연히 이야기죠. 나머지 부분은 그 스토리텔링을 더 강화하고 돋보이도록 도와주는 작업이에요. 조명감독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고요."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디즈니·픽사의 '업(UP)'이 30일 국내에서 개봉된다. 시사회를 앞두고 한국을 찾은 조명감독 조예원(37)씨를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주최 콘퍼런스가 열리는 서울산업통상진흥원(SBA)에서 4일 만났다.
'업'은 78세 노인 칼이 풍선으로 집을 띄워 남미로 날아가는 모험에 8살 난 꼬마 불청객 러셀이 합류하며 벌어지는 소동과 둘의 우정을 그린 작품.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보통 밝고 따뜻하고 화려한 화면을 예상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어두운 그늘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맞아요. 어두운 부분이 많고 밝은 부분이 적은 것이 작품 전체의 콘셉트예요.
각 장면에 들어가는 빛을 실제 상황을 그대로 복사해 만드는 건 없어요. 예를 들어 러셀이 숲에 둘러싸인 장면에서는 숲을 어둡게 해서 러셀에게 시선이 가도록 해요.
또 환하게 비추는 러셀의 얼굴은 작은 부분이지만 그 안에는 대비를 넣죠. 사람은 밝은 곳에, 대비가 있는 곳에 시선이 가게 돼 있거든요."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칼은 회색빛으로 어둡게 표현되고 러셀은 아주 밝은 빛으로 대비되지만, 두 사람이 함께하며 우정을 쌓아가면서 칼에게도 밝은 빛이 비치는 식으로 철저히 계산된 색과 빛으로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는 것.
예원학교와 서울대 미대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조씨는 산업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다녔고 미국 뉴욕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컴퓨터 아트를 전공했다.
”어렸을 땐 그림만 그리다 보니 충분한 정보가 없었는데 대학에 가서 이것저것 알고 나니까 그래픽에 관심이 생겼어요. 멀티미디어라는 것이 막 생기기 시작할 때였거든요. 컴퓨터 아트는 지금까지 제가 해온 순수미술과 접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고요."조씨는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페인팅을 이용한 질감까지 표현할 수 있는, 컴퓨터 안에서 하는 종합예술"이라고 말했다.
작품 한 편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년 정도. 그 중 조씨가 집중적으로 조명작업에 들이는 시간은 8-10개월 정도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드림웍스에서 '슈렉 2'에 참여했고, 픽사로 자리를 옮겨 '카', '라따뚜이', '월―E' 제작에 함께했다. 현재는 '토이 스토리 3' 작업이 진행 중이다.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업계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왜 한국애니메이션이 공감을 얻지 못할까 고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의 힘이에요. 아무리 작은 소재를 가지고도 상상력을 이용해 내 것으로 만들어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조씨에게도 뒤통수를 맞은 듯 충격으로 다가온 일화가 있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들은 생물학, 건축, 컴퓨터 공학, 미술 등 다양한 학문을 전공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었어요. 스토리보드 수업에서 동화 '재크와 콩나물'을 자신의 방식으로 변형해 가는 과제가 있었는데 과제를 펼쳐 놓고 보니 누구는히치콕 영화처럼 만들어 오질 않나, 누구는 누아르, 누구는 일본 만화의 러브스토리로 만들어온 거예요. 저는 겨우 나무 모양이나 바꿨거든요.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 큰 사건이었죠."철저하게 분업이 이뤄지면서도 작품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하면서 최종 작품을 만들어내는 픽사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는 그는 ”언젠가 한국에서도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