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첫 부임지인 진안 안천우체국에서 그의 담당 업무는 0번 전화 접수.
여직원이라는 이유로 전화 접수만 담당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던 그는 국장에게 자리를 옮겨 달라고 당돌하게 말했다. 국장은 1호 여성사무관이 됐다는 소식에 "27년 전 이미 예견했다”고 했다.
1990년 그는 전북체신청 최초 여성 행정직 공무원으로 발령이 났다. 특히 그는 2개월 만에 아이 낳은 것으로 유명하다. 일에 소홀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복대를 하고 펑퍼짐한 옷으로 몸매를 가렸던 것. 출산 2개월을 앞두고 임신 사실을 고백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일에 관해 철저했다.
전북체신청 영업 과장 박찬례씨(49). 그에겐 최초라는 부담스런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여성 최초 행정직 공무원, 최초 여성사무관, (면 단위) 최초 여성우체국장. '지면 안 된다는' 오기 하나로 버틴 지난 30년은 여성들의 유리천장을 없애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저에게 최루탄은 어머니와 아버지에요. 어려운 살림에 6남매를 뒷바라지 하셨는데, 형편 때문에 저를 대학에 못 보내주셨거든요. 그게 늘 아프셨던가봐요.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도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사무관 합격 소식을 듣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많이 떠올렸어요.”
언제, 어느 곳에서나 늘 최선을 다한다는 게 그의 철학. 사업실적이 안 좋은 곳에 배치될 때에도 그는 늘 고민했다. 진안에서 용담댐 수몰로 진안 주민의 20%가 떠난 상황에서도 수몰보상금을 예금으로 유치시키는가 하면, 조직 축소의 회오리바람으로 전주우체국 정원의 20%가 감면되던 해엔 장학 적금 수납제도를 개선시키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밤 10시 이후 퇴근은 물론이거니와 새벽에 퇴근하는 날도 비일비재했지만, 그렇다고 머무를 쏘냐. 걸프전 영향으로 에너지 절약 붐이 일던 해엔 전기·수도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보일러·전기기사들을 대동해 정비에 나섰다고 했다.
하지만 "일로 인해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줬준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하다”며 "첫째 아들 수능 볼 때 고사장에 못 가본 게 가장 마음에 걸린다”며 못내 속상해했다.
"불과 10년 사이 여인천하 우체국이 된 것 같아요. 양성평등제 실시로 그 비율이 낮춰졌지만, 80~90%가 여직원으로 임용된 적이 있었거든요. 이젠 능력만 있다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이 우체국 아닌가 싶어요. 능력있는 후배들이 제 자리를 이어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김은자 여성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