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 훈장인 남편과 판소리 하는 아내.
"저희 부부를 신기하게 여기는가 하면, 오히려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는 분도 많으세요."
지난 13일 남원시 도통동에 위치한 남원서당을 방문하니, 제35회 전주대사습 전국대회 판소리부 대통령상을 차지했던 허은선씨(35·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수석단원)와 남원서당 훈장인 한재우씨(36)가 큰 대청마루에서 부부가 나란히 맞는다. 한씨와 허씨는 한문 공부와 소리 공부로 무더위를 쫓고 있었다.
이들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 한씨가 판소리 강습생으로 남원에 내려와 스승이던 아내를 1996년 만나 2001년부터 터를 잡게 됐다. 서울 토박이인 한씨는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체계적인 틀이 없다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껴 40년 된 서당을 이어 받아 9년 째 한문 강습을 해오고 있다.
한씨는 "영어에 빗대 말하면 한자는 영어 단어고 한문은 영어 문장인데, 서당은 한자가 아닌 한문을 배우는 곳"이라며 "한문을 통해 예의와 효 등 덕목을 갖춘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자식이 부모를 해치는 끔찍한 일들이 나오게 되는 것은 지식을 가르치는 일에만 치중할 뿐 사람됨에 교육을 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덧붙였다.
소리 없는 내조를 하는 허씨는 열세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신산스러운 세상살이를 소리로 풀어내 대통령상을 거머쥐었다. 칠전팔기로 당당히 일어설 때까지 소리 공부를 하는데 시부모님과 남편이 뒷바라지를 다 해줬다고 할 만큼 돈독하다. 어려운 가정형편상 소리공부를 접을 수 밖에 없는 허씨를 자식처럼 챙기며 소리를 배울 수 있게 한 은인은 바로 성우향 명창. 그는 "부모님이 안 계신 자리를 좋은 분들이 많이 메꿔주신 것 같다"며 "소리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이어가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문 교육이나 판소리가 소수에 한정된 문화가 아니라 모두가 자연스럽게 누리는 생활문화로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모든 일에 너그러움을 따르면 그 복이 자연 두터우리라' 라는 말을 나침반으로 삼고 전통문화를 이어가기 위한 열정을 이어가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의 함박 웃음은 긴 장마의 지루함과 짜증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이진선 여성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