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한 영화] 해운대

'재난'은 소스, 진짜 재료는 '가족의 정'…박중훈·설경구·엄정화·하지원 연기파 4인방 CG 아쉬움 메꿔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 (desk@jjan.kr)

▲ 해운대 (모험, 드라마/ 129분/ 12세 관람가)

 

엄정화는 연기 잘 하는 배우다. 그동안 찍은 흥행 영화 이름을 다 말하기도 힘드니까. 박중훈이나 설경구는 말할 것도 없고 하지원도 꽤 괜찮은 배우. 이런 사람들이 모여 영화 한 편 찍었는데 하필 해운대에서 일어난 재난 영화란다. '한국형 재난영화'를 표방한 '해운대'는 자칫 1류 배우들이 모여 만들어낸 3류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 시작했다. 물론 우리나라가 온전히 재해에 자유로운 곳은 아니지만 장마나 태풍을 빼고 나면 이렇다 할 자연재해가 없는 것이 사실. 그렇다 보니 크게 와 닿지 않는 주제가 관객들에게 어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요, 오히려 감독의 안목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것이 '해운대'다. 이 재난영화는, 아니 한국영화는 '재난'이란 소스로 음식 맛을 돋보이게 만들었을 뿐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만들어낸 한국의 '정'이자 '사랑'이다.

 

영화는 시작에 앞서 2004년 일어난 인도네시아 쓰나미를 보여준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사상자를 낸 이 사건과 함께 당시 인도양에 원양어선을 타고 나갔던 해운대 토박이의 만식(설경구)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같은 배에 타고있던 연희(하지원)의 아버지가 사고로 죽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로 돌아온 시점은 해운대의 여름. 만식은 해운대 상가번영회 회장을 맡으며 무허가 횟집을 하는 연희를 보살피고, 동생 이상의 마음을 갖고 있지만 연희 아버지의 사고가 자기 탓이라는 생각에 표현하지 못한다. 한편, 지질학자인 김휘 교수(박중훈)는 5년 전 인도네시아 쓰나미와 흡사한 동해의 상황을 발견하고 '메가쓰나미'가 한국에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정부는 그 사실을 무시해 버린다. 더욱이 그는 이혼한 전처(엄정화)와 딸을 우연히 마주친 뒤라 복잡하기만 하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여름 휴가철 인파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부산 시민들 앞에 시속 800km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앞서 얘기 했든 이 영화는 '재난'이 목적이 아니었다. 여타 헐리우드 영화처럼 영웅 한 명이 모두를 구해내는 영웅 스토리도,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재난' 자체를 그리려 한 영화도 아니다. 가족간의 맹목적이고 끝없는 사랑, 남녀의 애틋한 사랑, 그리고 한국 사람만이 안다는 '정'을 말하기 위해 '재난'이란 소재를 살짝 빌려왔을 뿐이다.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정작 쓰나미가 보이는 시간은 30분 정도. 나머지는 인물들간의 거리와 감정을 설명하는데 모두 사용됐으니 알 만하지 않은가. 그런 이유로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애정 관계가 너무나도 슬프다. 죽음 앞에서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야 하는 10분이라는 시간은 보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하니까.

 

물론 너무 많은 인물 설명은 '지루하다'고 표현 될 수도 있고, 재난 영화에 2순위로 밀려버린 컴퓨터 그래픽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을 수 있지만 그 뭐가 대수겠는가. 컴퓨터 그래픽이 2순위로 밀린 것은 스토리와 배우가 너무 훌륭해서고, 감독이 적재적소에 손 써놓은 웃음과 눈물 코드만 제대로 이해 한다면 지루할 일은 절대로 없을 텐데 말이다. 완벽하다거나 세상이 남을 걸작이라 볼 순 없지만 어떤 선입견으로든 놓치면 후회할 한 편의 오락 영화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