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산성(山城)의 나라'라 할만 하다. 지금까지 조사된 성터(城址)만 해도 1650개가 넘으니 말이다. 조선시대 행정구역을 330개로 치면 시군당 평균 5개꼴로 성이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조선 세종때의 학자 양성지는 우리나라를 '성곽의 나라'라고 했다. 당시 중장비가 없던 시절이었던 만큼 백성들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 것인가.
이처럼 성이 많은 이유는 뭘까. 아마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외적의 침입이 잦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900여 차례가 넘는 외침을 받았다. 그 때마다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성곽을 축조했다. 특히 산성에는 평상시 군창(軍倉)을 두고 무기와 곡식을 준비해 뒀다. 적이 침입해 오면 평지의 주민들을 산성으로 피신시키고 항전에 나선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의 지형 때문이다. 전국토의 70%가 산지여서 이를 최대한 이용했다.
산성은 퇴뫼식과 포곡식(包谷式)으로 분류한다. 퇴뫼식은 산의 정상부를 테를 두르듯 쌓은 것으로 대개 규모가 작다. 포곡식은 성내에 계곡을 포함하는 형식으로, 계곡과 주변의 산세지형을 이용해 성벽을 둘렀다. 때문에 수원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다.
그러면 도내의 산성은 어떨까. 40여 년간 외롭게 산성을 연구해 온 전영래 선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축성된 산성이 100여개, 전체적으로 135개로 어림한다. 전 선생은 고대산성 81곳을 실측하고 연구한 '전북 고대산성 조사보고서'를 펴내기도 했다.
전주지역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남고산성과 동고산성, 황방산성 등이 남아있다. 사적 294호로 지정된 남고산성은 고덕산 서북록의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형 석성이다. 전주천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기린봉과 승암산으로 이어지는 동고산성과 더불어 전주의 남쪽을 방어하는 관문이랄 수 있다. 산성둘레는 2950m로 조선후기까지 장졸들이 지켰다. 황방산성은 소규모 석성으로 거의 파괴되고 흔적만 남아 있다.
동고산성은 900년에 견훤이 전주를 중심으로 후백제를 세울 때 왕궁터였음이 발굴조사 결과 드러났다. 현존하는 후백제의 유일한 유적이다. 전주시는 동고산성을 국가사적지로 지정받는 한편 100억 원을 들여 복원키로 했다. 전주 한옥마을과 연계한다면 좋은 역사문화 콘텐츠로 각광받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