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 운전자만 골라 고의사고

전국 면허 시험장·교육장 돌며 사기…94명에 2억여원 뜯어낸 공갈단 3명 검거

전북 군산경찰서는 3일 전북경찰청 브리핑룸에서 무면허 운전자의 차량을 뒤따라가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 일당들을 검거하고 범행에 사용한 증거품들을 공개하고 있다. 이강민(lgm19740@jjan.kr)

경기도의 공무원인 A씨(50)는 지난해 1월, 출근길 집 앞에서 누군가 차 트렁크를 두드리며 쓰러져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음주운전으로 면허취소 상태인 A씨는 바로 전날 면허시험 응시를 한 터였다.

 

목발을 짚은 40대 남성은 "당신 차에 부딪혀 인대가 파열된 것 같다"며 병원에 갈 것을 종용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이 남성의 사업상 친구라는 사람이 들이닥쳐 "면허증 좀 보자.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협박했다. A씨는 자칫 공무원 신분에 해가 될까 두려워 합의금 300만원을 주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농사를 짓는 B씨(57)도 지난 2007년 8월께 비슷한 사고를 당했다. 면허시험장을 찾아 시험에 응시한 다음날 B씨는 교통사고가 났고, "당신 차에 부딪혀 인대가 파열된 것 같다"는 40대 남성에게 합의금 1000만원을 줬다. 신용카드 대출을 받아 합의금을 준 B씨는 실의에 빠져 3~4개월간 술에 의지해 살다 화병으로 숨졌다.

 

A씨와 B씨는 교통사고 위장 공갈사기단의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피해자였다. 이들과 같은 피해자는 지난 2002년부터 전국적으로 94명에 이르고 이들이 지급한 합의금은 모두 2억4000여만원에 달했다.

 

군산경찰서는 3일 이처럼 무면허 운전자를 골라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 뒤 합의금을 뜯어낸 혐의(사기 등)로 이모씨(50) 등 2명을 구속하고 한모씨(40)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지난 6월3일 오전 10시40분께 전주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김모씨의 차를 뒤따라가 군산시 경장동에서 사고를 낸 뒤 500만원을 요구하는 등 지난 2002년 2월부터 최근까지 전국 운전면허시험장과 도로교통공단 교육장 인근에서 사고를 내고 합의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온 혐의다.

 

이들은 면허를 취소당해 무면허 상태인 응시자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2~3일간 미행해 동선을 파악한 뒤 범행을 저질렀으며 범행대상을 물색하는 '찍새', 응시자 차량에 부딪히는 '피해자', 사고 뒤 병원에 나타나 합의를 유도하는 '바람잡이' 등으로 역할을 나눴다. 범행 대상 차량이 정해지면 '피해자'는 차량 뒷바퀴에 목발 등을 끼워 넣고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돈을 뜯어냈다.

 

경찰 관계자는 "8.15 대사면을 앞두고 운전면허를 다시 받으려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같은 범죄가 우려돼 면허시험장 인근 등에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