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초근목피", "장리쌀", "부황" 등은 1960년대 이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다. 당시 우리 경제는 먹기 위한 몸부림들이 대부분이었다. 늙으신 부모님께 하얀 쌀밥 한 그릇 지어 올리는 것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배불리 쌀밥 한 그릇 먹이는 것이 자식들의 효도요 부모들의 희망이었다. 한마디로 쌀이 우리의 "삶" 그 자체였었다.
그런데 최근 웃지 못 할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소중한 쌀이 곳간에 가득 쌓여있어 농민들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있으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창고에 쌀이 그득하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의(衣), 식(食), 주(住)중에 으뜸인 먹을거리가 풍족하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작년에 풍년이 들어 쌀이 더 생산이 됐었다. 통상적으로 쌀값은 수확기가 지나면서 서서히 올라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한 달만 지나면 이른 햅쌀이 나올 단경기인데도 지금 쌀값은 작년에 수매한 가격 아래로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팔리지 않아 지금 농협의 창고 안에는 쌀이 가득 쌓여있다. 공기나 물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지만 평소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듯 쌀이 너무 많다 보니 소중함을 느끼기는커녕 푸대접을 받는 천덕꾸러기가 돼버린 것이다.
쌀이 이렇게 남아도는 데는 풍년에 따른 공급량 증가가 주원인이다. 여기에 UR(우르과이라운드)협상 이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MMA(최소시장접근) 물량의 증가도 영향을 미쳤다. 반면, 2008년 연간 국민1인당 쌀 소비량이 75.8kg으로 2001년 대비 13.1kg 감소했고, 대북지원도 끊기는 등 소비량도 줄었다. (그렇다보니 쌀값은 떨어지고 농협은 많은 재고로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판매할 수 없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특단의 대책 없이 이런 상태가 매년 계속 된다면 쌀 재고 부담으로 점점 더 깊은 어려움의 수렁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6천년 동안 우리 민족을 지탱해준 소중한 먹을거리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필자는 우선적으로 전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쌀 소비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쌀에 대한 적정한 가격이 보장되는 시장을 제대로 작동하게 하여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쌀 소비는 국민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사실 쌀은 '영양의 보고'이고 '다이어트식품'이며 성인병 예방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쌀눈에 있는 가바(GABA) 성분이 혈액의 중성지방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억제하며 간 기능을 좋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뇌에 산소공급을 늘리고 신경 안정 및 집중력을 높여줘 특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다고 한다. 우리 모두 아침밥 먹기부터 떡은 물론 쌀빵, 쌀라면, 떡볶이, 쌀음료까지도 즐겨 먹고 마시는 쌀 소비운동에 동참해 개인건강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최근 정부는 농협중앙회로 하여금 10만 톤의 쌀을 매입, 시장격리토록 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이번 조치가 쌀 값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쌀 소비 진작방안에 대해서도 정부에서 적극 검토한다고 하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어릴 때 어쩌다 수채구멍에 몇 알의 밥알이라도 보일 때에는 할아버지께서 여지없이 야단치시며 "쌀은 생명줄이다. 귀하게 알아라……"고 하시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그렇다 쌀은 우리에게는 생명줄이다. 할아버지가 귀하게 여기셨던 쌀이 앞으로도 반드시 귀하게 대접받는 시절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 나만의 기대일까?
/황의영(농협중앙회 상호금융총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