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명문 전주고 야구부 재건'이라는 특명을 받고, 지난 6월 22일 이 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부임한 최영상 감독(51).
최 감독이 오기 전 올해 전주고 야구부 성적은 전국대회 '전패'. 황금사자기(3월), 대통령배(4월), 대붕기(7월) 등 모두 1회전에서 탈락했다. 이달 초 최 감독이 이끌고 나간 '봉황기'에서, 전주고는 안산공고에 2-5로 지다 6-5로 역전승을 거뒀다. 올해 첫 승이었다. 꼴찌만 하던 아이들이 마치 일등이라도 한 듯 만세를 불렀다.
20일 전주고 야구부 숙소 2층 감독 방에서 얼굴이 수척한 그를 만났다.
지난 1977년 이 학교 야구부 창단 멤버이자 전 프로야구 쌍방울 투수 코치(1991-1996)로 활약했던 최 감독은 한일장신대 야구부를 떠나 왜 감독의 무덤(?)으로 전락한 모교로 돌아왔을까.
"밖에서 봐도 전주고 야구부 사태가 심각했습니다. 학교 체육부장이 학부모들이 '최 감독이 야구부를 맡아 주면 안정될 것'이라는 중지를 모아 전달했습니다. 어떻게든 모교 야구부를 살려보자는 마음에서 수락했지요.”
이 학교 야구부는 최근 반 년 사이 감독과 학부모 간 갈등으로 감독 두 명이 옷을 벗었다. 최 감독이 온 뒤에도 3학년 에이스를 포함, 선수 4명이 그만뒀다. 졸업반인 3학년을 빼면, 현재 남은 부원은 야구 최소 정원에 턱걸이한 9명.
지난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이미 이 학교 야구부를 맡아 1997년 '대붕기' 우승까지 거머쥔 그이지만 "처음 한 달은 오인식 코치(45)와 고생께나 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 감독은 내년에 전라중 야구부 9명 가운데 1명만 올라오는 것에 대해 몹시 불만스러워했다. 올해 소년체전 2연패를 달성한 전라중 야구부는 졸업반 9명 가운데 3명이 순천 효천고, 2명이 경기 야탑고, 1명이 천안 북일고, 2명이 군산상고에 진학하고, 1명만 전주고에 가기로 잠정 확정된 상태다.
"광주에서는 선수를 타 시·도로 보내, 교육청에서 해당 학교 스포츠전문지도자(일명 '순회 코치') 티오를 끊은 적이 있습니다. 지도자에게 선수 유출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 준 거죠.”
그러면서 그동안 공공연히 이어져 온 불법적인 관행도 조심스레 꺼냈다. 일부 학부모들의 경우, 다른 지역 고등학교에 자식을 진학시키기 위해 미리 그 지역에 위장 전입을 한 뒤, 진학하고 나서 다시 원 주소지로 옮긴다는 것. 최 감독은 "이것은 '전국적인 현상'이며, 만약 위장 전입이 밝혀지면 원래 지역으로 돌아가게 하든지, 심각히 짚어볼 문제”라고 꼬집었다.
"10여 년 전에는 전주에 야구부가 전주 효자초·진북초·금평초 등 세 곳이나 있었고, 중학교도 전라중과 동중 두 곳이 있었어요. 선수가 넘칠 때는 학교 지침이 신입생을 12명만 받으라고 해도 중학교에서 15명을 올려 보내, 가려서 받아야 할 처지였습니다.”
최 감독은 "군산처럼 3개까지는 아니어도, 전주에 초등학교 야구부 2개만 있어도 지금보다 선수 확보 어려움은 덜할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현재 군산에는 야구부가 군산신풍초·중앙초·남초 등 초등학교 3개와 군산중과 군산남중 등 중학교 2개, 그리고 군산상고가 있다. 전주는 전주진북초와 전라중, 전주고 등 초·중·고교에 1개씩밖에 없다.
그의 책상에는 '야신 김성근, 꼴찌를 일등으로'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이 놓여 있었다. 전 쌍방울 감독이었던 프로야구 SK 김성근 감독이 최근 군산에 왔을 때, 예전 '쌍방울 식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준 것이다.
최 감독은 "프로도 있어 보고, 대학에도 있어 봤지만, 제일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게 고등학교 지도자”라며 "중학교에서 올라온 선수들을 키워 성적을 내고 프로나 대학으로 보내는 게 보람”이라고 밝혔다.
그의 최종 목표는 단순·소박했다.
"전주고가 선수 수급도 원활히 되고 안정을 되찾으면 후배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초등학교로 내려 갈 겁니다.”
한편, 이 학교 야구부 '미니 군단'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달 중순 끝난 '미추홀기' 1회전에서 부산공고에 11-1로 진 일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투수 김지원(1학년)은 "일부러 져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 술 더 떠 내야수를 맡고 있는 김찬송(2학년)이 "내년 '황금사자기'에서 우승하겠다”고 말했다. 김수산(2학년)이 "인원 수가 적으니까 집중도 잘 되고 효율적”이라며 "지금은 우승 확률이 15% 미만이지만, 올 동계훈련을 거쳐 꼭 100%로 만들겠다”며 '부활'의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