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어떤 형태건 간에 '아픔'이 있습니다. 그 '아픔'을 어떻게 할까요 ? 극복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픔의 나음 속에서, 아픔의 극복 속에서, 삶의 맛을 발견하려 했고, 그 살맛을 아는 인간 사이의 공감을 발견하려 했습니다.”
'즐거운 편지'로 등단한 지 올해로 51년. 시인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황동규씨(71·서울대명예교수)가 지난 22일 오후 2시 국립전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렸던 '토요 명사 초청 특강'에 초대됐다. '문학적 기품'을 주제로 한 그의 강연은 죽음에 맞서 뒤척이며 열병을 앓고 난 뒤 환한 삶과 시에 대한 촉수들을 엿본 시간이었다.
그에게 아픔은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가장 중대한 출발점. 그는 "일단 가르치는 일을 끝내자 기다리던 자유와 함께 있는 줄도 모르던 병들이 찾아왔다”며 "'비문증', '대상포진','족저근막염'이라는 우리말 큰사전에도 오르지 않는 병을 이겨내면서 휩싸인 고통과 환희가 시를 쓰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저는 눈에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비문증'이 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다 녹아내릴 것 같은 가을이었는데, '비문증'은 녹아내릴 기미가 안 보이는 겁니다. 그 순간 '날건 말건!'이라는 시구가 떠올랐죠. 그게 무슨 문제가 될 수 있냐고 시가 가르쳐준 겁니다.”
열네번째 시집의 표제작 '겨울밤 0시 5분'은 병의 고통과 가장 정직하게 대면한 뒤 쓴 시.
"진실의 자리에서 인간을 볼 때 가장 인간적인 요소가 '아픔'입니다. 무병의 삶보다 병을 앓고 낫는 곳에, 아픔을 극복하는 곳에, 인간적인 기품이 있어요. 이 시는 병을 앓다가 낫는 맛이 바로 삶의 맛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작품입니다.”
그는 "어쩌면 고통이라는 삶의 진실이 삶의 방향을 바꾸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며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와 대화하고 시로부터 배우게 된다”는 그는 "이젠 시가 친구 같다”며 "늙음을 뚫고 솟는 환희 또한 아픔을 뚫고 솟는 환희처럼 가슴 흔드는 환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