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출신 불세출의 프로 바둑기사 이창호(李昌鎬) 9단에는 여러 별명이 따라 붙는다. 희노애락을 모르는듯 무덤덤한 대국태도로 돌부처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무리 판세가 불리해도 무리하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 하여 강태공이라고도 불린다. 무엇보다 과분하지 않은 별명은 끝내기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해 붙여진 신산(神算)이다. 이밖에 바둑의 국보(國寶), 무협지식으로 흑도(黑道), 외계인, 삼중(三重)허리등 많은 별명이 있다.
11세 어린 나이에 입단한 이창호는 14세때인 1989년 KBS바둑왕전에서 국내 첫 타이틀을 따내며 세계 최연소 타이틀 보유 기록을 세웠다. 17세 때인 1992년에는 동양증권배를 차지하면서 세계를 제패했다. 1990년대는 이창호의 전성기 였으며, 이는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당시 국내는 물론 국제 기전에서도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명실상부 세계 바둑계의 전설이 돼있었던 것이다.
전성기의 화려한 기록들이 이를 입증한다. 1990년 41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연간 최다관왕(13관왕, 1994년), 연간 최다승(90승 19패,1993년). 연간 최고승률(88%, 1988년)등은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들이다.
세월앞에 장사는 없는 법인가. 올해 34세인 이창호의 최근 잇단 부진이 여간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중국에서 열린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중국의 창하오에게 0대2로 패하면서 우승을 넘겨줬다. 2005년 삼성화재배 준우승을 시작으로 4년동안 메인 세계대회에서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고 무려 7차례나 준우승에 머무르면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지난주(20일)에는 국내대회인 물가정보배에서 그동안 4번 맞대결해 한번도 진적이 없는 신예 김지석 4단에게 0대2로 패해 타이틀을 내주었다. 현재 이창호가 공식 보유한 국내외 타이틀은 4개이지만 3개 대회는 이미 중단됐거나 연내 개최가 불투명한 점을 감안하면 달랑 하나만 남는다. 입단 이후 최대의 위기인 셈이다.
이창호의 부진을 두고 여러 설(說)들이 많다. 체력적 부담이라든지 젊은 도전자들의 등장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이창호가 정말로 하락세에 접어든 것인지, 아니면 돌부처 특유의 뚝심으로 보란듯이 재기해 고향 팬들을 즐겁게해줄 수 있을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이다.
/박인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