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금융위기 이후와 서민경제 - 김상국

김상국(경희대 교수)

사람들이란 참 묘하다. 얼마 전 까지 금융위기라면서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정부는 과감한 재정정책을 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위기가 조금 잔잔해 지니까, 이제는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풀어 인플레이션이 걱정된다고 한다. 어찌 보면 걱정 많은 것이 사람인가 보다. 우선 그들의 말을 들어 보자.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경기가 오는 9~10월을 전환점으로 완연한 회복세로 돌아서겠지만, 위기가 끝나면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걱정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폴 쿠루그만 교수나 요시마사 일본 경제재정상은 오히려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이 걱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융위기 이후가 인플레이션이 될지 디플레이션이 될지를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최근 금융위기는 투자은행들이 파생상품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시중에 너무 많은 돈(유동성)을 제공한 것이 문제인데, 정부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또 더 많은 자금을 공급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당장 문제는 해결하였지만 미래에는 더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즉 인플레이션이 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상당히 타당성이 높은 주장이다.

 

그러나 미래의 예측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첫 번째로 우선 각국 정부가 이번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쓴 돈의 규모를 살펴보자. 미국을 예로 들면 오바마 대통령이 위기 해결을 위해 투입한 돈은 약 7,890억 달러다. 정말 대단한 금액이다. 그러나 미국 파생상품의 규모가 200조 달러라는 것을 알면 0.8조 달러의 오바마 예산이 얼마나 작은 규모인가를 쉽게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작은 규모의 돈으로도 미국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다른 것이 아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단순히 파생상품의 붕괴가 아니라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붕괴'였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 정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정부가 금융시스템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은행들은 무리한 금융상품들을 만들어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사람들은 불안하여 금융투자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금을 회수하였다.

 

그래서 문제가 더 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지금까지 감춰져 있던 모든 치부가 들어나고, 정부가 그것을 해결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임으로서 사람들은 신뢰를 회복하고 다시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전체 규모에 비해 턱 없이 작은 돈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다. 마치 물이 안 나오는 펌프에 약간의 물을 집어넣고 펌프질을 함으로서 지속적으로 물이 나오게 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또한 암이라고 불안해서 병원을 가지 않았던 사람이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올바른 치료를 함으로써 회복이 빨라지게 된 것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에도 우리 서민들은 기업의 회생과는 무관하게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첫째는 돈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위기의 원인이 자금을 너무 많이 풀어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것이다. 그것은 주로 대출한도를 줄이거나 대출심사를 엄격히 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미래에는 인플레이션 보다는 디플레이션이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다음으로 어려운 점은 실업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자금 빌리기가 어려워지면 경쟁력 있는 기업과 경쟁력 없는 기업 간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된다. 줄어든 소비시장을 대상으로 많은 기업들이 더 큰 경쟁을 함으로써 승자와 패자의 차이는 더 커질 것이다. 실업율은 당분간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보통 사람은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축은 미덕이다. 지나친 저축도 문제지만 높은 소비율은 더 큰 문제이다. 버는만큼 써야하고, 벌지 못하면 쓰지 않아야 한다.

 

둘째는 직장의 눈높이를 낮춰야한다. '청년실업이 문제다'라고 하면서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근로자를 수입하고 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미래에 원하는 직장을 대부분의 사람이 갖는 호시절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직장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셋째는 경쟁력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파는 것'이 아니라 '사갈 수밖에 없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래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밝다. IMF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분간 쉽지 않은 시절을 현명하게 보내야할 것이다.

 

/김상국(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