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문화콘텐츠 50] 풍성한 전북의 풍물 가락 '걸판진 잔치'

(18) 호남좌도 임실 필봉·호남우도 정읍농악…민중 하나되는 지역마다 색다른 맛

▲ 다시 떠오르는 농악

 

농경사회의 전통 속에서 각 지역의 특성을 바탕으로 이어져 오던 농악이 급속한 도시화 과정 속에서 잽이들이 작고하거나 고향을 떠나 쇠퇴하였다. 여성농악단 등 유랑 형태를 거쳐 극장 공연화의 모습으로 변모해 가기도 했다. 1980년대 학생운동, 노동운동과 연계된 대학가 풍물운동이 펼쳐지면서 활기를 띠는 듯 했지만, IMF사태가 닥친 1990년대 말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농악은 주변장르로 밀려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풍물의 앉은 반이 특화된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공연 장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통문화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전통문화를 주목하게 됨으로써 희미해 졌던 전통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다시 농악이 꽃 피고 있다.

 

▲ 산세 따라 변하는 가락

 

농악은 오랜 세월을 거쳐 오는 동안 지역의 전승행사와 자연적 환경 여건에 따라 가락과 연주형태가 변형되어 왔다.

 

풍물은 크게 경기·충청도의 웃다리농악, 경상도의 영남농악, 강원도의 영동농악, 전라도 서쪽 평야지대의 호남우도농악과 동쪽 산간지대의 호남좌도농악로 구분된다.

 

지역마다 맛이 다른데 그 맛의 비결은 그 지역의 자연 경관을 닮았다. 호남우도는 평야지대이므로 굿거리 같은 맛에 다양한 가락이 있고, 좌도는 산간이므로 가락이 빠르고 힘이 있다. 경상도는 빠름과 동시에 북이 잘 발달했고 강원도는 경상도보다 더 산간이라 더 담백하고 빠르고 격렬한 맛이 있다. 그리고 경기·충청은 비산비야(非山非野)라 가락이 두마치가 많고 평탄한 맛을 준다.

 

웃다리농악이라 일컫는 경기·충청 일대의 농악은 상쇠의 기능이 우세하여 꽹과리가 중심이 되고, 호남 농악은 장고가, 영남농악은 북이 중심이 되어 연주된다.

 

이들 중 진주삼천포농악·강릉농악·이리농악·평택농악·임실필봉농악 다섯 지방의 농악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호남우도의 모태 정읍농악

 

정읍농악은 옛 호남우도 농악의 모태였다. 현재 정읍농악은 정읍시내에만 모두 20여 농악단이 활동하면서 과거의 옛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다.

 

유지화 상쇠 명인이 이끄는 정읍농악보존회, 김종수 소고 명인이 이끄는 정읍시립농악단과 악기장 이수자 서인석씨의 정읍재인청농악단, 설장고 명인 고광명씨가 이끄는 정읍시민농악단을 비롯해 정읍풍물보존회, 정읍주부농악단, 샘골아그들농악단 등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광주 임방울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는 정읍농악보존회와 정읍시립농악단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하는 등 최근 각종 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정읍농악은 호남우도농악의 독특한 특징과 장점을 모두 담고 있다. 리듬이 다채롭고 구성지며 윗놀이보다는 밑놀이에 치중한 율동의 조화로 굿가락이 다양하고 리듬이 다채롭다.

 

특히 정읍농악의 오채질굿(길굿)은 연주하기 어려운 가락의 하나로 혼합박으로 어우러져 미묘한 맛과 변화를 주는 이 고장 전통의 탁월한 가락으로 농악가락의 백미로 알려져 있다.

 

또 쇠꾼이 쓰는 상모를 부포상모라 하는데 개인놀이 마당에서 이를 쓰고 노는 부포놀음은 기예가 대단히 정교하고 무척 어려운데 최고 수준의 명인으로는 나금추(라모녀) 선생과 유지화 선생 등이 있다.

 

정읍농악 명인들은 정읍과 호남서해안 평야지대의 고창과 부안, 김제, 군산, 익산, 영광, 함평, 나주, 목포, 광주 등지에서 우도풍물패들을 이끌었다. 과거의 명인들이 지역을 넘나들며 호남우도 정읍농악을 전했던 곳 중 특히 가까운 거리에 있던 익산과 김제, 정읍, 고창의 농악은 전라북도지정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돼 있다.

 

▲ 호남좌도 임실 필봉농악

 

임실 필봉농악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 필봉농악은 강진면 필봉마을에서 300여 년 전부터 내려온 호남 좌도농악의 대표적인 전통 마을굿으로 농악을 배우려고 전국에서 매년 3만여 명이 꾸준히 찾고 있다.

 

1993년 전북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 27번 국도변에 세워진 기존의 필봉농악전수관에 최근 한옥생활체험관, 박물관 성격의 풍물굿 전시관, 야외공연장 등을 조성하고, 28과 29일 풍물촌 개관식 행사를 갖는다.

 

필봉마을에는 예로부터 당산굿·마당밟기 정도의 단순한 농악이 전승되어 왔는데, 오늘날과 같은 높은 수준이 된 것은 1920년경에 상쇠 박학삼 선생을 마을로 초빙하여 그의 농악을 배우면서부터라고 한다. 송주호, 양순용 선생을 거쳐 양진성 선생이 상쇠로 활약하고 있다.

 

농악의 종류에는 섣달 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 당산제굿, 보름굿과 징검다리에서 치는 노디굿, 걸궁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이 있다. 이 중에서 판굿은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

 

필봉농악의 특징으로는 앞굿 중심이 강한 다른 지방의 농악에 비해 뒷굿, 또는 놀이 중심이 강하여 잡색, 고깔 소고가 많고 가락은 전체적으로 힘차고 꿋꿋하고 느낌이 강하다.

 

▲ 풍성한 전북의 풍물가락

 

지면 관계상 두 풍물단을 언급했지만 전북에는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농악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다시 굿판으로 돌아와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개꼬리상모로 이름난 류명철 명인이 이끄는 남원농악, 임실필봉농악과 함께 좌도 대표 마을굿의 하나인 진안중평풍물굿, 그리고 설장고 김형순 명인이 이끄는 이리농악, 고깔소고춤을 멋드러지게 구사하시는 정창환 명인의 고창농악, 상쇠 나금추 명인의 부안농악, 이준용 명인의 김제농악 등이다.

 

또 전북에 뿌리를 가진 명인으로 채상소고춤이 일품인 김운태 명인, 호남우도 가락을 전국적으로 전했으며 30여 년간 한국민속촌에서 줄기차게 민속촌제 농악판을 두드린 정인삼 명인 등도 전북의 가락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이 풍성함이 또 어디로 흘러 어떤 꽃으로 피어날지 기대된다.

 

/양승수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