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양심이자 시대의 큰어른이셨던 김대중 전대통령이 우리곁을 떠나셨다. 길지 않은 기간동안 노무현 전대통령에 이어 김 전대통령마저 떠나보낸 우리 마음은 이젠 기대고 의지할 데 조차 없어 하염없이 비통하고 허전해 하고 있다. 두 전직대통령 정부에서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한 정치인은 현재의 심정을 고애자(孤哀子)와 같다고 표현했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세상살이의 어려움 속에서 기댈 어떤 곳을 혹은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 대상이 존재할 때는 찾아가 안기고 기대면서 긴 호흡과 함께 안식을 취할 수 있으련만, 아늑한 품과 든든한 등을 내어줄 이 없고 편안하게 쉴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은 자기설움에 북받쳐 그저 탄식만 나올 뿐이다.
가족, 부모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품은 모든 이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물리적, 심리적 공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치고 힘들 때면 어머니의 자궁같은 안락한 곳으로 찾아들거나 그리워한다. 그것도 지치고 힘들 때 만이다. 작년부터 시작해 요즘 우리 사회는 어머니 신드롬이 지속되고 있다. 소설, 드라마, 뮤지컬, 연극, 영화 등 다양한 공간에서 어머니는 약간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으나 희생하고 품어주고 그늘이 되어주는 어머니임에는 틀림없다. 올 봄 우리 지역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한 정치인의 중심코드도 어머니였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힘들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어머니 역할만을 요구하고 그 뒤에 숨으려고 하는지, 주변인으로부터 강요되는 어머니의 역할에 정작 어머니 스스로는 버거워하시지는 않는지, 그 역할이 부담스러워 스스로를 모성이라는 틀 안에 가둬버리시지는 않으셨는지… 어머니도 분명 맛난 음식을 좋아하시고 즐거운 놀이에 흥겨워하시고,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하시며 행복해하실 줄도 아신다.
그러나 기억되는 어머니 모습이란 자식을 위해 헌신을 마다하지 않으신 모습이거나 '난 배 안고프니 너나 어이 먹어' 하시고 부뚜막에 걸쳐 앉아 물 한 바가지 벌컥 들이키시는 모습, 아랫밥상에서 '난 생선대가리가 맛있어.'하시는 정도의 모습들이다. 왜 한 번도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아버지에게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모습은 기억되지 못할까? 자식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들은 한 번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알아차리고 자신을 위해 당당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 국민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를 보면서 드라마작가의 맛깔스러운 대사에 열광했고,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에 사랑을 듬뿍 보냈다. 하지만 어머니 '한자의 안식년 휴가(많은 이들은 가출이라고 받아들임)'에 극중 가족들의 생활은 온통 엉망진창 뒤죽박죽이 되었고, 시청자들은 한자의 탈출에 '이해는 가지만 엄마로서의 역할' 운운하며 비난이 쇄도했다. 이에 작가는 한자를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엄마를 늬들 밥으로 생각하지 말라'며 일갈했다. 먼 훗날 내가 떠난 자리에서 자식들의 추억속에 이기적이라고 비난받을지라도 혼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줄 알고, 통통하게 살오른 제주은갈치구이의 가운데 토막을 좋아하는 어머니로 기억되고 싶다.
/이윤애(전북여연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