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정 "'죽는날' 동그라미 쳤었죠"

뇌종양 극복 후 싱글 발표, 7살 연하 남친 공개

연기자 이의정(34)의 첫번째 싱글음반 제목은 '리인게이징(Reengaging)'이다. '인생 2막', '제2의 삶'을 뜻한다. 그가 뇌종양 극복 후 다시 얻은 삶에 대한 남다른 느낌을 담은 제목이다.

 

3인조 그룹 우노&베티, 여성듀오 알모너에 짧게 몸담았던 그가 솔로로 처음 낸 음반 수록곡은 모두 자신의 얘기다. 타이틀곡 '윤선수'와 수록곡 '좋아좋아'는 2006년부터 만난 7세 연하 남자 친구가 노랫말의 주인공이다. '하늘아 도와줘'는 뇌종양 투병 경험담을 담아 심금을 울린다.

 

 

1일 만난 이의정은 인터뷰 도중 머리 오른쪽 부분 흉터를 보여주면서 "팬 이 부분이 치료를 받은 흔적인데, 이젠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다"며 웃었다.

 

2006년 그는 뇌종양 판정을 받아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6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다행히 뇌에 생긴 7㎝ 크기 림프종은 악성이 아니었고 한방 치료와 강한 의지 덕택에 소멸해 현재는 완치 단계에 이르렀다.

 

당시 머리가 심하게 아파 병원을 찾았다는 그는 두개골을 뚫어 조직검사를 받았다. 병실에서 아침 뉴스를 통해 '이의정 뇌종양 3개월 판정, 시한부 인생'이라는 보도를 접한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 나 죽어?"라고 물었다고 한다. 2남2녀 막내딸의 물음에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셨다고 한다.

 

"조직 검사를 받을 때, 몸 왼쪽 부분이 마비돼 대소변도 가리기 힘들었어요. 기억력 테스트도 하루 8시간씩 받았고요. 하지만, 병원에 진을 친 취재진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고 수술 대신 집에서 편하게 죽기로 했죠. 3개월 되는 날이 2006년 10월23일이었는데 달력에 '나 죽는 날'이라고 동그라미를 쳐뒀었죠."

 

이 말을 하는 그의 눈이 금세 붉어지며 눈물이 고였다.

 

그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친 전날이 가장 무서웠다"며 "'내일 아침에 눈을 뜰까, 안 뜰까'란 생각으로 잠들었는데,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내 몸을 만져봤다. 그래서 '아, 1년6개월은 사는구나'라고 다시 날짜를 체크해뒀다. 이런 무서운 시간을 두 번 겪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완쾌됐을까.

 

"병원에서는 전이만 막아줄 뿐,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죠. 전 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오히려 안정된 마음으로 지냈어요. 평소보다 밥도 많이 먹고 훨씬 밝게 생활했죠. 병원에서 먹었던 약이 독해 내장기관 손상으로 한약도 먹었지만, 많이 웃으며 엔돌핀 넘치게 생활했죠. 병원에서는 그 덕택에 치유됐다고 하더군요."

 

그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데 대해 "배우 생활을 오래해 '죽음이란, 치열하게 욕하고 싸우는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위안했다"며 "난 인지도도 얻었고, 집도 잘 살았고, 해외에서도 살아봤고, 외제차도 타 봤고, 대학도 나왔고, 해볼 거 다 해봤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지더라"고 덧붙였다.

 

완치 덕택인지, 몇몇 무속인들은 뇌종양은 무병이었으니 신내림을 받으라는 전화도 걸어왔다고 웃었다.

 

 

2006년 퇴원 이후 죽더라도 체력의 한계까지 일해보자는 생각에 인터넷 쇼핑몰 '아미까' 사업에 몰두했다. 이때 의류사업을 하는 지인을 통해 '피팅 모델'을 소개받았다. 지금의 남자친구인 7살 연하의 신창엽 씨로, 이의정과는 4년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이의정은 "남자친구가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스럽고 자상하다"며 "내가 조금만 아프다고 해도 부산 사투리를 써가며 심하게 걱정해준다. 지금은 내 의류 사업체 총판회사의 대표로 있다. 내가 힘들 때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시건방 춤'도 춰주는 애교 만점인 연인"이라고 자랑했다.

 

다음 활동으로는 드라마를 생각하고 있다. 1996-1999년 방송한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일명 '번개머리'로 큰 인기를 끌었던 그는 지금껏 이 캐릭터를 넘지 못했다.

 

그는 "'남자 셋 여자 셋' 출연 때가 전성기였던 것 같다"며 "당시 잠을 자고 싶어서 이 작품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다. 4년 간 하루 한시간씩 잠을 잔 것 같다"고 웃었다.

 

대다수 사람은 이 작품부터 이의정을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1980년대 초반 아역으로 데뷔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부터 연극, 각종 사극과 미니시리즈 아역으로 출연했죠. 산울림과 방송에서 '꼬마야'를 함께 부른 적도 있고 7년간 빙그레 광고 모델도 했어요. 초등학생 때 '뽀뽀뽀'에 출연했는데 고3 때 11대 뽀미 언니도 맡았죠. '세 친구', '지금은 연애중', '루루공주', '위풍당당 그녀' 등 수많은 드라마를 했지만 결국 '남자 셋 여자 셋' 캐릭터를 뛰어넘지 못했네요."

 

지금껏 오디션 한번 제대로 보지않고 순탄하게 연기 생활을 이어왔다는 그는 "음반을 내기 위해 작곡가 지국현 씨 앞에서 처음으로 오디션이란 걸 봤다"며 "빅마마의 '체념'을 불렀는데 가창력은 없지만 감정이 살아있다고 프로듀싱을 맡아줬다. 투병 이후 마음의 문을 열자 새로운 기회가 생겨 다시 힘이 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