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소방서 운봉의용소방대 대장, 춘향골 맛김치 대표, 주부 봉사단체 여성뱅크 회장….
남들이 하나도 제대로 해내기 힘든 일들을 도맡아 하는 열혈 여성 박점덕씨(61).
"올해로 여성의용소방대에서 활동한 지가 18년 째 됩니다. 처음부터 저를 대장으로 앉혀놔서 얼떨결에 가입했죠. 큰 불이 많이 나는 지역이 아닌 까닭에 긴박한 상황은 거의 없어요. 태풍이 들이닥친다든가 홍수가 온다든가 하는 자연재해가 났을 때 돕는 일이 더 많습니다."
우연히 맡게 된 일이었지만, 한번 주어지면 똑 부러지게 해내는 성격 때문에 유난히 일복이 많은 그다.
운봉여성의용소방대는 현재 50여명 주부들로 구성, 남성의용소방대원들과 함께 독거노인, 장애인, 다문화 가정을 돌며 화재예방 점검, 소화기 기증을 비롯해 말벗 동무까지 도맡고 있다. 가사일을 담당하는 주부들인 까닭에 안전사고 위험 대응, 119 신고 요령 등을 숙지해 꼼꼼히 설명하기 때문에 방문 가정에서도 반긴다고 설명했다. 2004년 태풍 루사가 강타했을 당시 비바람이 마을을 뒤덮어 마음을 졸였던 때가 엊그제 같다며 올해엔 가을철 불청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15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춘향골 맛김치 공장도 봉사활동을 하다가 착안한 사업. 그는 여성의용소방대 대장으로 활동하면서 어르신들을 위해 김치를 담가 오다가 일손이 모자라 밭에서 썩게 되는 배추를 발견하면서 김치사업에 뛰어들었다.
"저희 집안 대대로 내려온 김치 담그는 노하우가 있었어요. 규모가 이렇게 커질 거라곤 예상 못했는데, 손맛이 통했던 거죠. 청결, 신선한 재료, 정성. 이 삼박자가 맞아야 맛있는 김치가 나온다고 여겨 식자재로 무조건 저희가 다 재배했습니다. 차별화의 전략은 거기에도 있죠."
현재 국·내외로 수출하는 건실한 업체로 성장했지만, 우여곡절도 많았다. 김치의 맛은 뛰어나다 하더라도 홍보와 마케팅 기술이 부족해 판로가 크게 확보되지 않았던 것. 문턱이 닳도록 무수한 박람회를 방문한 결과 국내 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영국, 두바이까지 수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저온창고 누전으로 2001년 김치공장에 큰 불이 났다. 보험사로부터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해 문을 닫을 뻔한 위기까지 갔지만, 신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많은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1996년엔 주부들로 구성된 '여성뱅크'를 발족, 대표를 맡으면서 매월 소망의문, 성일정신요양병원, 남원사회복지관 등을 방문해 다양한 봉사활동까지 참여하고 있다.
봉사활동에 더욱 몰입하게 된 이유가 따로 있다. 그는 얼마 전 유방암 진단을 받고, 고된 항암치료를 하면서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더욱 생각하게 됐다고.
하지만 그에게도 아직 못 이룬 소망이 있다. 소년 소녀 가장들과 함께 어르신들을 위한 빨래방을 운영하는 것. 무의탁 노인은 정부에서 보조가 나오지만, 자녀들이 객지에 나가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의 경우 제도권에서는 관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기자에게 먼 길까지 찾아와서 고맙다며 정성스레 맛깔스런 김치 보따리를 싸줬다.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왔다. 돌아오는 내내 건강한 모습을 오래 오래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임영신 여성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