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수요일 서예가 이은혁 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이 연재됩니다. 전북 서예의 맥은 한국 서단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오랜 역사와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어, 서예에 대한 관심은 곧 우리 지역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먹을 갈고 붓을 드는 것은 깊이 생각하고 여유를 가지는 일입니다. 바쁜 일상이 문제라면, 이 이사장의 '글씨로 만나는 옛 글'을 통해 묵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
지금 세간에서 일컫는 서예는 예술의 한 분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단음절로 '서(書)'라고 하였다. 쉽게 우리말로 풀이하여 '글씨'라고 환치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쓰는 행위와 그로 인해 남겨진 결과물 그리고 그 모양(태)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씀(書)'에는 개관적 대상물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 대상물은 다름 아닌 문자이다. '서'가 인간의 삶에서 한시라도 분리될 수 없는 언어생활과 직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요즘 항간에 회자되는 '소통'의 매개체로서 무형의 말이 있고 유형의 문자가 있다. 말은 순식간에 행해지고 사라지는 반면 문자로 쓰여진 것은 시간적 공간적 연속성을 가진다. 여기에서 '서'의 역사성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서'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채 수 천년의 세월을 우리와 함께 해온 것이다.
이후, 모필(붓)의 발명은 일상적인 쓰는 행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붓을 사용함으로써 문자의 표현방식이 보다 다양해졌고, 그로 인하여 붓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기능 또한 요구되었다. 이렇듯 개개인의 습성이 글씨에 자연스럽게 발로하는 문자서사가 생활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미감을 가미하였다. 그 가운데 시대의 미감을 반영한 아름다운 글씨는 하나의 형식을 이루며 대유행을 거치는데 이것이 이른바 '서체(書體)'이다. '서체'는 우리말로 '글씨꼴', 더 축약하여 '글꼴'이라 할 수 있고, 서양식 표현을 빌리자면 '스타일'에 해당한다. 이른바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로 불리는 서체가 시대에 따라 나타나며 마침내 이를 선도하는 전문 서가(書家)가 출현한다. 역사에서는 이 시점을 대개 중국 한대로 규정한다. 이전에도 문자가 있고 서사가 행해졌지만 주로 주술적 의미나 제왕적 권위를 대변하는 특수적 상황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개인의 심미의식이 가미된 후대의 서사활동과는 구분 지어 논해야 한다.
개인의 심미의식이 글씨에 투영됨으로써 비로소 서가와 서품(書品)이 세상에 공존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문자의 기록이라는 역사적 가치에다 예술적 가치를 보태게 된 것이다. 일치일란(一治一亂)의 순환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서가가 부침하며 다시 재현할 수 없는 불후의 필적들을 남겼다. 일필휘지로 대변되는 즉흥적인 서가 역사로서 또는 서품으로서 고색창연한 자태를 간직한 채 당당히 우리 앞에 서 있다. 중국의 서법, 우리의 서예, 일본의 서도라는 서로 다른 명칭이 있지만, 유독 서예는 예술적 감각이 탁월한 우리 민족성을 대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가경전에 유어예(游於藝)라는 말이 있듯, 우리민족은 일상에서 격조 있는 삶을 지향했던 것이다.
우리 고장 전북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여 유난히 전통의 텃새가 강한 곳이다. 기질이 순박하고 여유가 있어 맛과 멋을 동시에 선보였고, 지금 그 여유 속에서 느림의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서예의 꽃이 만발하고 있다. 어쩌면 천년의 전통을 토대로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삶을 중시하는 성향이 맞아떨어진 필연적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역사적으로 필명을 드날린 서가들의 붓길을 따라 예술적 순례를 떠나고자 한다. 때로는 서가에 얽힌 고사나 일화가 등장할 것이고, 서품에 담긴 멋과 철학을 이야기하며 음미할 것이다. 독자제현의 성원과 가르침을 기대한다.
/이은혁(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사장)
※ (사)한국서예문화연구회 이은혁 이사장은 1990년 '대한민국서예대전' 대상을 수상, 현재 초대작가로 활동 중인 서예가이다.
한문학으로 문학박사를 받아 전주대 한문교육과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서예담론 보고읽는 서예」 등이, 역서로는 「조선환여승람(김제)」 「중국서예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