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돌아갈 사회는 무엇인가. 내가 돌아가서 살아야 할 국가는 지금 어떤 곳인가. 해가 뜨는 아침의 희망도 해가 지는 저녁의 회한도 다 오염된 인간의 발악이 지속되고 있는 곳이 아닌가. 오직 나만이 있고 나의 이익만이 정당하고 다른 신념은 모두 나의 신념의 적이 되는 그 증오가 세상의 힘으로 행사되고 있는 곳은 아닌가.'('내 고향 앞바다 선유도' 중에서, 「오늘도 걷는다」)
식민지 시대, 한 중학생이 우연히 길가에서 한하운 시집을 주운 뒤 문학에 눈을 뜬다. 분단의 비극과 한국전쟁의 충격 속에서 결국은 방랑승이 되었지만, 친구인 나병재 화가가 그가 쓴 '폐결핵'이라는 시를 몰래 응모하면서 문단에 나오게 된다.
반독재 투쟁으로 인한 고문과 감옥살이를 이겨내고 가을만 되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시인의 문학관과 시대관, 통일관과 인생관이 궁금하다면 「오늘도 걷는다」(신원문화사)를 펴라. 군산 출신 고은 시인(76)이 오랜만에 산문으로 말을 걸어왔다.
「오늘도 걷는다」는 한국을 대표하는 고은 시인의 삶의 행로와 내면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산문집이다. 총 4부로, 1부 '세상의 메아리'와 4부 '남아 있는 자취'는 세상에 대한 고뇌와 그것에 대한 시인의 깊고 아픈 성찰이다. 2부 '시를 부르면서'에서는 고은 시의 근원과 반세기에 걸친 시인의 문학 행로를 보여준다. 3부 '이 땅에서의 꿈'에는 나라를 잃고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민족시인의 바람이 담겨있다.
시인은 "시에 대해서 종종 말하고 싶었고 시대의 액면도 말하고 싶었다. 가버린 삶의 잔해들도 잠시 붙잡아놓고 싶었다"며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머리말에 밝혀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