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제실박물관은 별도 건물을 짓지 않고 기존 창경궁에 있는 환경전, 명정전과 양화당 등 부속 전각 7개동을 개조해 전시실로 활용했다.
제실박물관은 설립이 그 전해인 1908년이지만, 순종황제와 왕족들만 감상하다 국민과 함께 즐기기 위해 이듬해 일반에 공개한 것이다.
프랑스의 루브르나 베르사유 박물관 또한 원래는 궁궐 건물을 박물관으로 탈바꿈해 일반에 개방했듯이 왕족이나 귀족들만 즐기던 문화를 국민이 누리도록 했다는 데서 의미가 각별하다.
제실박물관은 개관 당시 조선왕실에 전해내려온 서화류, 도자기, 금속공예품 등 6천800점을 소장했으며 개관 이후 고려 도자기와 통일신라 불상, 조선시대 공예품 등을 집중 구입해 1912년에는 1만2천점의 소장품을 확보했다. 이후 이곳 소장품은 이왕가박물관 등으로 이어졌다.
물론 한국 근대박물관 역사에서 조선총독부박물관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여민해락(與民偕樂)'이 29일부터 11월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회는 국보 19건 등 한국 박물관의 100년 역사를 대표하는 국내외 소장품 150여점을 한 자리에서 만날 기회다.
특별전을 하루 앞둔 28일 전시물이 언론에 미리 공개됐다.
전시실을 들어서는 순간 눈길을 사로잡는 청자상감포도동자문(靑磁象嵌葡萄童子紋) 주전자와 받침은 제실박물관의 첫 구입품 가운데 하나다.
제실박물관은 고려자기와 옛 절터에서 무단 반출된 불상과 서화, 공예품 등을 시중에서 사들였는데 이 주전자와 받침은 1908년 일본인 골동품 상인으로부터 구입한 물건으로 포도넝쿨과 아이들을 새겼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이 기와집 11채 값을 주고 구입했다는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손으로 전통문화를 지키려 했던 노력의 상징으로 꼽힌다. 세종의 어제서와 예의에 이어 집현전 학자들의 해례와 해례서로 이뤄져 있다.
한송사지 석조보살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불법 유출됐다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반환된 문화재 500여점 가운데 하나다. 보살상의 바닥에는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의 관리번호가 있다.
백자청화 '홍치이년' 명 송죽문호(白磁靑畵'弘治二年'銘松竹文壺)와 백자철화포도문호(白磁鐵畵葡萄文壺)는 각각 동국대박물관과 이화여대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대표적 백자로 나란히 전시돼 있다.
1970년대 활발하게 진행된 발굴조사의 성과물인 신안 보물섬 유물 등도 관심을 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옹이 1994년 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청동투구도 눈에 띄는 전시물이다.
한국전쟁 시기 피란지인 부산에서 개최했던 이조회화특별전, 1957년 유럽ㆍ미국에서 열었던 순회전의 포스터와 도록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물을 소중하게 여겼던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한다.
특별전의 하이라이트는 천마도, 몽유도원도 등 국외에 있거나 국내에 있어도 보관 등의 이유로 쉽게 볼 수 없었던 유물 30여 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국보 204호 천마총 천마도는 빛 등에 민감해 특수보관장에 보관하다 1997년 전시 이후 12년 만에 공개됐다.
말 머리 부분에 뿔 비슷한 모양이 확인돼 말이 아니라 기린이라는 주장이 수년 전부터 제기됐는데 이번 전시를 앞두고 고해상도로 촬영한 적외선 사진에는 머리 부분에 돌출된 형태가 더 또렷하게 나타나 관심을 끌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유병하 전시팀장은 "이 동물이 말인지, 기린인지 학술적 연구는 안 된 상태에서 우선 공개하게 됐다. 박물관의 공식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몽유도원도(일본 덴리대 소장)는 1996년 이후 13년 만에 고국 땅을 밟는다. 몽유도원도는 안견이 안평대군으로부터 꿈에서 본 도원 이야기를 듣고 사흘 만에 완성한 1447년작으로 제작연대가 알려진 현존하는 조선시대 회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안견의 작품 중 유일하게 진품으로 공인됐으며,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있다.
안견의 그림에 신숙주 등 당시 대표적 문인들의 시문을 이어 붙인 두루마리 폭은 85cm, 길이는 무려 11m에 이른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는 국내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관음보살이 바닷가의 바위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아래쪽의 동자를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고려불화를 일반적으로 수월관음도라 하는데 고려시대에는 수월관음도가 많이 제작됐고 국내외에 40여점이 전하지만 이 작품은 용왕이 등장하는 등 독특한 양식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유물 보존과 대여처와의 협약 문제로 몽유도원도, 천마도 등 일부 유물은 아쉽게도 제한된 기간에만 볼 수 있다.
이밖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정조 편지' 66건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정조 편지는 두 개의 큰 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인 '정조신한(正祖宸翰)'과 정조가 외삼촌 홍낙임에게 보낸 '정조어필(正祖御筆)'이다.
정조는 외삼촌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안부를 알려주며 편지를 보낼 때마다 음식 선물을 함께 보내며 그 항목을 편지에 적었다. 외가 집안의 경사에 매우 기뻐하며 이 소식을 어머니께 전하고 싶어한 정조의 마음도 엿볼 수 있다.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는 당시 인사 문제, 세간의 풍문, 주요 인물과 그 집안에 관한 정보, 민심의 동태 등 국정 전반에 관해 언급한 편지를 모은 것이다.
다만 전시품 150여점에서 쉽사리 상호 간 연결성을 찾지 못해, 이번 특별전이 백화점식 나열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준다.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좋고 신선한 유물'에 전시품 기준이 쏠려서인지, 최근 발굴성과로 장안의 화제가 된 부여 왕흥사지 백제 사리기나 익산 미륵사지 백제 사리기 관련 유물은 전시장에서 그다지 부각이 되지 못하고 푸대접을 받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