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에 다시 태어난 심청전 목판

목판서화가 안준영씨, 1906년 간행된 심청전 상권 복각

'송나라 말년의 황주 도화동의 한사람이 잇스되 셩은 심이요 명은 학규라...'(심청전 상권)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소설인 심청전의 상권 목판이 조선시대 최고의 출판문화를 꽃피웠던 전북 전주에서 다시 태어났다.

 

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목판서화체험관 대표 안준영(52)씨는 최근 심청전 상권 30장(60쪽)의 목판 복각(復刻) 작업을 끝냈다. 520여 글자가 들어가는 한 장을 양면에 새기니 목판은 모두 15장이다.

 

심청전은 문장체 소설에 가까운 경판(京板)계와 판소리의 영향이 묻어나는 완판(完板)계 등 이본(異本)이 여럿 있지만 이들 모두 목판은커녕 낱장 전체가 온전히 남아있는 판각본도 찾기 어렵다.

 

선비만 보던 경전이나 문집과 달리, 서민들이 서로 돌려 읽다 보니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탓이다.

 

안씨는 1906년께 간행된 상.하권 71장짜리 완판본 완서계신판(完西溪新板) 완질을 원광대 박순호 교수(국어교육과)로부터 어렵사리 구해 지난해 11월 복각을 시작했다. 대구와 경북 안동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문하생들이 작업을 도왔다.

 

전주에서 간행된 목판본인 완판본을 모본(母本)으로 택한 것은 세계 최고로 꼽히는 우리나라 목판인쇄 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판본이기 때문. 질 좋은 전주한지를 사용하는 데다 서체도 다양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목판인쇄의 시작이라면 완판본은 그 끝"이라는 게 안씨의 생각이다.

 

그는 복각 작업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숨구멍이 거의 없고 견고한 산벚나무로 판을 짠 뒤 직접 만든 20여 가지의 조각칼과 망치로 한 획을 서너 번씩 당기거나 밀다 보면 하루 8시간씩 쏟아도 한 장을 새기는 데 4~5일은 족히 걸린다.

 

안씨는 우리 목판 인쇄술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잉크는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라지만 먹은 그렇지 않아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종이로 가장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게 우리 목판 인쇄술입니다. 쉽고 간단하게 찍지만 30만 부를 찍어도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죠."

 

안씨는 내년에 하권 41장까지 모두 복각할 계획이다.

 

"하권까지 완성되면 책으로 찍어 흐릿한 복사본을 보고 있는 연구자들에게 보급할 생각"이라는 안씨는 10월6일 목판서화체험관에서 기념식을 열고 이번에 복각한 목판을 공개한다.

 

이어 한글날을 맞아 10월11일까지 진행되는 '목판으로 만나는 한글 문화유산전'에서도 안씨가 복각한 훈민정음 언해본 등과 함께 심청전 목판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