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문화콘텐츠 50] (24)전주 완판본 - 고소설의 성지

조선 출판·인쇄문화의 보물창고

전라감영 목판 '증수무원록언해'. (desk@jjan.kr)

출판·인쇄의 기록문화를 선도했던 우리 전주. 조선시대 전라감영에서 발간된 60여권의 책, 개인 출판업자에 의해 20여 종류의 한글 고대설과 250여 종류의 고문헌이 출간되었다. 뿐만 아니라 1803년부터 1932년에 이르기 까지 끊임없이 다양한 고소설들이 전주에서 출간됐고, 현재 전하는 완판본 한글 고소설의 종류는 총 23가지로, 판본이 다른 것까지 합치면 50여종이 이른다. 이 덕에 전주는 고소설의 성지가 될 수 있었다.

 

▲ 서울 다음으로 최고인 출판·인쇄문화

 

문자는 대량의 정보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랜 동안 보관할 수 있어서 다른 도구나 기계들이 발명되기 이전, 정보전달의 거의 유일한 도구였다. 문자를 통한 정보소통의 가장 일반화되었던 방법은 문헌을 통한 것으로 문헌 출판의 능력은 곧 그 사회의 문화 발달이 중요한 지표가 된다. 세계의 출판문화에서 우리나라 금속활자의 발명이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에 세계문화사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각 시대별로, 각 지역별로 독특한 출판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다. 지방의 감영마다 문헌을 출간했고, 사찰과 서원 등에서도 문헌을 간행했다. 근대에 들어 출판의 대량화 요구에 맞추어 방각본이 출현하면서 지역별로 독특한 방각본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서울의 경판본, 전주의 완판본이다. 경판본이야 국가의 수도인 서울에서 간행된 것이기 때문에 출판여건이 좋은 상황이었지만, 완판본은 출판여건이 어려운 지방에서 간행된 것이어서 우리의 관심을 더 끌게 한다. 완판본 중에서도 특히 한글 고소설은 경판본 고소설과 함께 고소설사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 전주의 종합문화가 반영된 완판본

 

완판본이 전주에서 등장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언어 외적인 요소가 작용하였을 터. 판목을 만들기 위한 목재공급의 수월성, 책을 찍어낼 한지의 생산·공급이 용이성, 출판을 담당할 수 있는 높은 재력 등이 이것의 조력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러한 책을 직접 쓸 수 있는 다양한 서예가와 판각능력을 가진 각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던 상황이 주요 요인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들을 소비할 수 있는 독자층이 넓게 자리 잡고 있었고, 이들을 전국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사업조직인 판매망이 조직되어 있었을 것이다. 서적 출판이 단순히 작업이 아니라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완판본이 존재는 그 당시 전주의 종합문화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면 완판본의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건을 바탕으로 책을 판매하는 책방은 주로 전주부성 4대문 밖에 형성된 시장부근, 특히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길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또한 방각본을 찍어 판매한 책방은 서계서포, 다가서포, 문명서관, 칠서방 등 10여 곳으로 확인되고 있다.

 

▲ 중앙과 다른 완판본 한글 고소설

 

출판이 아무리 그 사회·문화의 척도가 된다고 하여도 출판된 문헌의 언어와 문자가 난해한 것이면 출판을 통한 정보전달이라는 기능을 반감시키게 된다. 어떠한 문자로 문헌을 간행하였는가 하는 부분도 출판문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완판본 한글 고소설이 갖는 가치와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지방에서 간행된 문헌 중에서도 각 감영에서 간행해낸 문헌은 대체로 중앙에서 간행해낸 문헌과 큰 차이가 없지만 방각본인 완판본 고소설은 중앙의 간과 큰 차이를 보인다. 각 감영에서 간행한 문헌은 주로 중앙 간본의 복각본이 많아서 지방판별로 언어상의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와는 달리 완판본 고소설은 경판본 고소설에 비해 언어적 차이가 무척 커 전라도만의 방언들이 수록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한편 완판본 한글 고소설은 대중문화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다. 완판본 한글 고소설에 보이는 서체에서 서민들의 서체를 볼 수 있기 때문. 전주문화의 특징이 궁중문화가 아니듯 완판본 고소설에 보이는 한글서체는 궁중의 서체가 아닌 일반 서민들의 서체이다. 경판본이 오늘날 서체의 명칭으로 말하자면, '궁체'의 하나인 반면 완판본은 '민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완판본에도 궁체와 유사한 서체도 보이지만 경판본의 궁체와는 확연히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 출판문화 속에 담긴 전주의 미래

 

우리가 완판본의 역사를 추적하는 것은 그 역사 속에 숨겨져 있는 전주문화의 특징을 찾고, 그 문화를 오늘날 되살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는 데에 있다. 완판본에 대한 이와 같은 결실은 전주향교 옆에 들어설 완판본 문화관으로 맺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다시금 고민에 길에 접어들게 된다. 과거의 찬란했던 출판문화는 조상들의 것이기 때문.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은 완판본을 통해 전주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따라서 완판본 문화관은 단순히 완판본이 주향인지, 그 특징이 주향인지 알려주는 공간에서 벗어나 전완판본에 담겨져 있는 전주정신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시설이 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출판, 인쇄문화 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한 한지와 서예문화 등 전주의 문화·역사를 완판본 속에서 창조하는 힘이 되길 바란다.

 

/최우중 문화전문객원기자(전주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