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실천, 이 사람의 약속] ⑥전북여연 박영숙 상임대표

종이컵 없애고 이면지 활용…"무조건 아껴쓰죠"

전북여성단체연합의 박영숙 상임대표가 이면지를 복사용지로 재활용 하고 있다. 정헌규(desk@jjan.kr)

전북여성단체연합 박영숙 상임대표와의 인터뷰 약속은 박 대표의 빡빡한 대외 일정 사정으로 어렵게 잡혔다. 약속시간에 맞춰 박대표가 몸담고 있는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전북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 들어서니 박 대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깔끔하게 잘 정돈된 사무실에서는 5∼6명의 직원들이 있었고, 한 직원이 밝게 웃으면서 "박 대표께서 오고 계신다"며 차를 내놓는데, 넉넉한 머그컵이 인상적이다.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전북을 대표하는 여성단체 사무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호기심이 발동, 잠시 둘러보았다. 한 쪽 벽면 책꽂이에는 각종 책자며 서류 등이 빼꼼히 꽂혀있고, 한 켠 탁자 등에는 어떤 실수로 젖은 봉투를 말리고 있다. 빈틈이 없다.

 

복사기 옆의 이면지 재활용 박스와 곳곳에 붙여진 이면지 재활용 강요(?) 안내문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단체 행사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천연세제 만드는 방법이 담긴 배너는 이곳이 만만치않은 '에코 리더'집단임을 단박에 눈치채게 했다.

 

물론 종이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잠시 후 사무실에 도착한 박 대표는 검소한 인상이다. 그는 "전북여성단체연합(이하 전북여연)은 모든 행사에서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북여연 사무실과 행사장에서 종이컵이 사라진 지 3년이 넘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후변화의 심각성, 대응 방안 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방송과 교육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 대중들은 여전히 실천이 미약하다며 걱정했다.

 

"지금의 기후변화 징후들은 많은 사람들이 몸으로 체감하고 있으며, 이것은 나와 우리 모두에게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역여성들과 함께 지금 고민해야 하는 당면 문제인 거죠"

 

이러한 고민으로 전북여연에서는 올해 '에코 홈' 강좌를 열었다. 에코 홈 강좌는 전북지역 여성들을 대상으로 친환경 활동을 통해 몸과 자연을 살리는 방법들을 교육하는 자체 프로그램.

 

천연재료를 이용해서 화장품과 비누·샴푸를 만들고, 각종 전통재료에서 얻은 예쁜 색깔로 먹거리를 장식한다. 빛바랜 물건들은 한지로 리폼해서 다시 쓰고, 인체에 유해한 일회용 생리대 대신 몸이 좋아하는 천으로 대안 생리대를 만드는 등 각종 친환경 아이디어가 넘친다.

 

박 대표는 "'살림'의 본래 의미는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일입니다. 지금까지는 여성의 살림이 가부장적인 관점에서 비생산적인 것으로 비하되어 왔지만, 이제 여성들의 살림이 사람과 지구를 살리는 살림이 되어야 합니다"라며 지구를 살리는 일이 '살림'과 본질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또한 박 대표는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평화를 사랑하죠. 바로 그 평화는 인간과 인간의 평화 뿐 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평화까지 아우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건강한 지구환경을 위해 여성들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하고 있었다.

 

박 대표는 환경문제가 소비자권리운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장을 통해 시장으로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화학제품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재료들로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이것들이 우리 몸과 환경에 얼마나 좋지 않고 위험한 지 모른 채 사용합니다. 그런데 기업들은 그 물건들을 꼭 써야만 하는 것처럼 과대포장해 광고를 해대죠. 그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은 소비를 강요 당하고 특히, 여성들은 피해가 더욱 심합니다"

 

그는 감성을 자극하는 광고를 통해 과대포장된 화학제품들을 꼭 써야 하는 것인지, 소비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굳이 화학제품을 구입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천연재료 등을 활용해 내가 직접 만들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에코 홈 강좌를 필요로 하는 곳은 직접 찾아가 교육도 하는 박 대표는 "우리지역 여성들이 이제 많이 알고 또 깨닫고 있다"며 꾸준한 활동을 다짐했다.

 

박 대표의 (우문이지만)개인적인 녹색실천을 물었다.

 

"무조건 덜 쓰는 거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많이 걷는다는 박 대표는 '세탁기 덜 쓰기' 등 생활 속의 녹색 실천가였다.

 

그런데 박 대표의 녹색실천은 조금 달랐다.

 

천연화장품과 천연샴푸를 본인이 직접 만들어 오랫동안 써오고 있으며, 좀 불편하다 생각될 수 있는 대안 생리대까지도 직접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지독할 정도다.

 

천연샴푸와 화장품의 효과에 대해 물었다.

 

"머리가 새로 난다고 하면 과대광고죠. 그런데 머리가 더 빠지지 않고, 모근이 튼튼해지는 것은 확실합니다."라며 환하게 웃는 맑은 얼굴이 박 대표 말처럼 '어머님께서 물려주신 고운 피부 덕분'만은 아닌 듯했다.

 

이마가 넓어져 고민하시는 전주시민들은 전북여연에 문의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박 대표는 세탁기에 쓰는 가루세제를 이제 천연비누로 전환해 볼 계획이다. 이같은 계획이 그의 바쁜 일정상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꼭 행동으로 옮기고 마는 그에게 신뢰가 간다.

 

전북여연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자활공동체와 전북여연 회원단체가 함께하는 대안화폐장터를 10월 중순경 열 계획입니다. 내가 가진 자원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는 곳이죠"

 

더불어 내년에는 에코샵을 개방 운영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앞서 소개한 천연화장품, 천연 샴푸, 대안생리대를 더 많은 전주시민이 이용할 수 있을 듯하다.

 

초경을 치른 딸에게 요란한 파티와 화려한 케이크를 전해주는 축하보다, 천으로 만든 대안생리대를 선물하는 어머니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박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녹색실천에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여성에게만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하는 실천이 지구 환경도 살리고 사람도 살릴 수 있습니다"

 

/고경희(전북생명의 숲 간사)

 

※ 다음 릴레이 주자는 전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소순열 학장입니다.

 

※ 이 기사는 본보와 전주의제 21이 공동으로 기획했으며,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인터뷰어로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