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8명창 중에서도 송흥록은 가왕(歌王)으로 일컬어진다. 노래의 왕이라고 하니 아마도 송흥록이 당대 제일의 소리꾼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송흥록은 이른바 동편제 판소리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대명창이다. 송흥록이 남원 운봉 비전리 출신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송흥록은 남원 판소리의 시조이기도 한다. 남원 사람들이 남원이 판소리의 본고장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송흥록 때문이며, 남원 사람들이 운봉 비전리에 판소리 성지를 조성한 것도 바로 이 송흥록이 여기 출신이라고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송흥록을 가왕으로 받들어올린 이는 모흥갑이었다고 한다. 모흥갑은 전주 출신이라고 하는데, '춘향가'의 '이별가' 중에서 "여보 도련님 날 데려가오. 여보 도련님 날 데려가오. 여보 도련님 날 데려가오." 하는 부분이 그의 더늠이라고 한다. 모흥갑 또한 대단한 명창이어서 이유원이라고 하는 선비는 「임하필기(林下筆記)」에서, 당대 명창 중 민간에서는 모흥갑을 제일로 친다고 말한 바 있다.
송흥록이 남원 운봉 비전리 출신이며, 진주 기생 맹렬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송흥록이 진주에서 소리를 하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송흥록의 소리에 감탄하는데, 맹렬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는 송흥록이더러 앞으로 피를 세 동이는 더 토해야 명창이 되겠다고 했다. 송흥록은 그 길로 다시 수련을 한 뒤 진주에서 다시 소리를 하게 되었다. 맹렬이 그 소리를 듣고 반하여, 다음날 송흥록과 함께 도망을 하여 운봉에서 같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송흥록이 남원 운봉 출신이 아니라, 익산 곰개(웅포) 출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1940년에 나온 「익산군지」 명창 송흥록이 명필 서홍순, 은세공기술자 김양복과 함께 웅포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세상에서 이르기를 세 가지 기이한 일이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웅포에는 송흥록이 10년 동안이나 소리 공부를 했다는 십장유암이라는 암자도 있고, 송흥록이 묻혀 있다는 무덤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원 운봉에서 살았다는 사실 또한 여러 기록으로 확인된다. 우선 「조선창극사」에 운봉 비전리 출신으로 되어 있다. 조선조 말 시조 가객 안민영은 「금옥총부」에서 '임인년(1842년) 가을 주덕기를 데리고 운봉으로 송흥록을 찾아갔더니, 신만엽 김계철 송계학 등 여러 명창들이 기쁘게 맞아주어, 함께 머무르면서 수십 일을 실컷 놀았다'고 하였다. 주덕기는 모흥갑의 제자이다. 신만엽 김계철 등도 다 대명창으로 8명창에 드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 운봉 송흥록의 집에 가서 놀았다고 했으므로, 송흥록이 분명히 운봉에서 산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금옥총부」에는 '칠원에서 삼십 리 떨어져 있는 송흥록의 집에 창원 기생 경패와 함께 찾아갔더니, 맹렬이도 함께 있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칠원은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다. 송흥록이 맹렬이와 함께 있었다는 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칠원에서 삼십 리 떨어진 곳이었다고 하니 운봉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송흥록은 꼭 한 곳에 머물러 살았다기보다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다고 보는 편이 온당할 듯하다. 그런데 송만갑의 후손들의 증언에 의하면 송흥록의 동생이자 역시 명창이었던 송광록이 웅포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웅포에서 태어났다는 송흥록은 말년을 웅포에서 보낸 송광록의 와전일 가능성도 있다.
송흥록은 초청을 받아 소리를 하러 다니는 소리꾼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꼭 한 곳에 머물러 살았다기보다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다고 보는 편이 온당할 듯하다. 그러나 어디서 출생했는지는 모른다. 지금까지의 여러 증거로 보면 남원 운봉 비전리가 맞을 것 같지만, 이와 다른 기록도 있으니 참 난감하다. 사실 어디서 낳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디서 어떻게 활동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
남원 사람들은 송흥록이 남원 사람이라는 결정적인 사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송흥록의 무덤을 찾으려는 노력이 대표적이다.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일일 것 같기도 하지만, 판소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남원이 판소리의 본고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남원 사람들의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이 되어 있기에 설득력을 갖는다.
/최동현(군산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