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25가 지나고 1940년대 군산에 미군 공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외국인들이 물밀듯 쏟아졌어요. 미대를 나왔건 안 나왔건 간에 그림에 재주가 있던 사람들은 군산 예술의거리로 나왔죠. 초상화가 가장 바빴어요. 명화는 어쩌다 한번씩 그렸지만."
서양화가 한경자씨(65)는 초상화만 벌써 40여 년 째 그렸다. 밥벌이도 됐지만, 인물화는 자신 있었다고 했다. 공유 갤러리(관장 이정임)가 추진하는 '숨은 작가 프로젝트'에 첫 초대 손님이 된 한씨. 그처럼 잊고 지낸 시간이 생애 첫 전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해봤을까.
22일까지 열리는 '삶의 초상'展엔 손때가 묻을 만큼 묻은 미군 병사들과 그의 가족들 초상화 1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20여 년 전 작품이지만, 세밀한 묘사와 선명한 색감 덕분으로 지금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옥구 출신으로 그는 열아홉 살에 극장 간판 그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서른이 되어서야 캔버스를 만났지만, 성실함이 몸에 배인 덕분에 사진 보다 더 실물을 닮은 인물을 그릴 수가 있었다고.
"당시 미군들은 꼬깃꼬깃한 사진 한 장 들고 와 초상화를 부탁했죠. 정성 들여 완성한 작품을 보고 흡족해지면, 눈시울이 붉어지면서'땡큐'를 연발하곤 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향수가 짙었죠."
당시 인물화를 그린 이들은 공무원 월급 보다 5배 이상 되는 수입을 벌었다고 했다. 전업 작가로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푸념이 계속되는 요즘, 먹고 살기 위해 해야만 했던 그의 작업은 오늘의 나침반이다. 배고프지 않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붓질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란 뜻.
"특히나 인물은 관찰력이 좋지 않으면, 아무래도 빨리 못 그리지요. 인상의 특징을 먼저 파악할 줄 아는 관찰력도 필요하지만, 데생 실력이 좀 있어야 돼요. 특징을 못 살리면 아무리 그려도 닮지가 않아요."
때문에 그는 한 작품을 위해 사진을 보고 또 보고 닳을 때까지 봤다고 했다.
"사진은 오래 보고 있으면, 그 사람 인상이 나와요. 어디서 나오냐. 눈매에서 나오고, 입가에서 나와요. 하지만 외국인들은 이목구비가 뚜렷해 비교적 빨리 그릴 수가 있었죠."
아마도 그는 초상화를 평생 해야 하는 작업으로 여기는 것 같다. 세상과 사람을 꿰뚫는 눈을 갖길 바라면서 말이다. 치열한 작가 정신과의 해후만으로도 의미가 깊은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