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전국 체전 - 백성일

전북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지난 63년 44회를 시발로 80년 61회, 91년 72회, 2004년 84회 등 4차례 열렸다. 오늘날에야 전국체전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5공 때까지만 해도 가장 화려하고 큰 행사였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을 개최한 이후부터는 전국체전이 관심권 밖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체육인 한테는 관심이 높고 시도간 순위경쟁이 치열하다.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전은 올해로 90회를 맞았다.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창설된 후 첫 행사로 그해 11월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전국체전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 실질적인 종합대회의 효시는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하여 야구, 축구, 테니스, 육상, 농구 등 5개 경기가 열린 1934년 제15회 대회를 꼽는다. 현재 사용하는 정식 명칭은 27회 대회 때부터고 종전의 자유참가제를 시·도 대항제로 정착시킨 것은 29회 때다.

 

30회 때까지 서울에서 개최해오다 51년 32회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광주에서 개최했다. 그후 서울과 지방의 균등한 체육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38회는 부산에서, 41회는 대전에서 그리고 1963년에는 44회가 전주에서 열렸다. 전국체전을 발전 과정으로 놓고 볼때 45~56년까지는 부활기, 57~71년까지는 도약기, 72~81년까지는 개혁기, 82~87년까지는 발전기, 88~현재까지는 승화기로 구분한다.

 

전주에서 처음으로 열린 44회 전국체육대회는 숙박시설이 없어 민박으로 치렀다. 선수들이 각 가정에 분산 수용되어 숙박을 해야 했다. 인정체전이란 말을 남길 정도로 전북인의 훈훈한 정을 심어줬다. 자원봉사단을 구성해서 남원 광한루 등을 구경시켜 주기도 했고 비빔밥이 선수단에게 인기를 끌었다. 선수단에게는 버스와 택시 그리고 숙박요금을 할인해줬다.

 

80년 61회 전국체전은 준비 과정부터 어려웠다. 78년 황인성지사가 박정희 전대통령이 주재하는 지방장관회의 석상에서 박대통령으로부터 지난 광주 대회에서 도세가 열악한 전북이 3위를 기록했다는 치하를 받고서 유치를 결정했던 것. 유류 파동이 나 대회 준비가 벅찼지만 정부 지원으로 조철권 전지사 때 성공적으로 치렀다. 김완주지사가 이끄는 올 성적은 어떨까.

 

/백성일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