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읽었는데, 뉴질랜드에 '소리'라는 지명이 있답니다. 아주 아름답다고 들었어요. 제 작품에서 '소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한 거에요. "
노재순 한국미술협회 이사장(60)의 21번째 개인전. 지역에서 갖는 첫 초대전인 만큼 그의 감회는 남다른 것 같았다.
"전주에서 하자고 하니, 그냥 두 말 없이 하고 싶더군요. 도시의 조용한 이미지가 제 그림과 잘 맞아요."
지난 7월 서울 선화랑에서 연 개인전에서도 '소리'를 그렸지만, 100호, 200호 대작만 소화했다. 전주박스나비갤러리(관장 박경숙)를 위해 소품 20여점만 추려왔지만, 그 와중에도 수없이 그리고 찢는 과정이 반복됐다.
"50대가 되니까, 그림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서해안으로 여행을 떠났죠. 그리고 2년간 풍경만 그렸습니다. 풍경이 내 체질에 맞다 싶어 2000년부터 움직이는 자연 풍광만 담았어요. 홍익대 다닐 때 남들과 똑같은 그림은 절대 그리지 말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다른 걸 고민해봤죠. 흔들리는 갈대, 흩어지는 구름,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 이런 걸 그려보자 했습니다."
그의 캔버스엔 '철썩' 하고 한번 내지르곤 훌쩍 잠적해버리는 파도가 많다. 바위에 힘차게 부딪치는 큰 파도 보다 뒷꿈치를 살짝 들고 조심스레 걷는 것처럼 조용히 안착하는 그런 파도다.
덧칠은 거의 없고, 여백도 유난히 많다. 바탕색을 칠한 뒤 귀퉁이에 구름이든 나무든 파도든 슬쩍 슬쩍 그려넣어 대충 그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강풍이 몰아치는 제주도 애월리, 해무가 자욱한 백령도, 갈대숲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좋은 태안 신두리 등 개인 날의 풍경보다는 바람과 해무가 낀 흐린 표정 혹은 순풍에 떠는 숲의 표정이 섬세하게 담겼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임기는 내년 1월까지. 그는 하루빨리 서양화가 노재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박항률 전시 갔다가 후회가 막 들었습니다. 그림 안 그리고 뭐했나 하는. 올해가 60인데, 지금부터 죽어라 그려도 모자라요."
'소리'를 통해'정화(淨化)의 선율'을 깔아주는 듯한 이번 전시는 11월20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