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군 정우면 초강리 샘골농협 자체창고.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열어 제끼자 입구부터 천장까지 가득 쌓인 볏가마가 눈 앞을 가린다.
"이게 모두 지난해 사들인 쌀가마들입니다. 이제 올해산 신곡을 사들여야 할 때인데, 농협 차원에선 해법이 없어 난감할 뿐이죠."
샘골농협 이명수 전무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재고량을 계산한다. "샘골농협이 보유한 창고는 모두 10개 동입니다. 이들 창고 용량은 5000톤 가량 되는데 현재 보유한 물량이 무려 4200톤 정도에 이릅니다. 여유 공간이 800톤 가량에 불과합니다."
추곡수매를 직접적으로 총괄하는 이광섭 경제상무도 하소연을 이어간다. "현재 창고 용량으로는 올해산 공공비축미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체 수매는 하고 싶어도 쌓아둘 공간이 없어 불가능한 실정이에요."
정부가 지난달 사들인 시장격리분 미곡으로 샘골농협은 2800톤 정도를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물량은 장부상 소유주만 바뀌었을 뿐, 창고에 그대로 남아 있다. "시장격리분 미곡이 창고에서 나가야, 그 물량만큼 자체수매에 나설 계획입니다. 연말까지 기다려 봐야 수매량을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죠."
농촌 현장에선 쌀 문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과제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읍통합미곡처리장 박근완 대표이사는 "지난해도 풍년이었지만 올해는 이보다 10% 정도 생산량이 더 늘 것으로 판단된다"며 "쌀 수급의 순환구조가 공급과잉과 소비감소로 깨진 상황이어서,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농촌 현실은 더욱 암울한 상황으로 치닫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난마처럼 얽힌 쌀 문제는 농협으로선 해결할 수 있는 한계를 이미 넘어섰다는 설명이다.
통합미곡처리장의 경우 지난해 조곡 한가마(40㎏)에 5만4000원에 사들인 후, 원가 이하에 판매하면서 무려 2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기록해 경영까지 압박을 받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산더미 같은 재고량에 일부 영세 농업인들은 싼 값에 올해산 신곡을 내다 파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올해의 경우 가격이 문제가 아닙니다. 구곡은 쌓여있고, 수매는 막힌 상황에서 자체 창고시설을 보유하지 못한 농민들은 저가에라도 팔 수밖에 없잖아요."농협 판매장에서 만난 한 농민의 하소연이다. 정읍지역 농협들도 미곡처리장을 산물벼 중심으로 사일로에 저장하는 작업을 벌이며 바쁜 손길을 놀리고 있지만, 건곡 수매에는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
정읍시에 따르면 관내 쌀 재고량은 정부양곡 68만3000톤과 농협·미곡처리장 보유분 22만7000톤 등 모두 91만톤. 이에 따라 추가로 사들일 수 있는 공간은 143만9000톤으로 파악된다. 시 관계자는 "올해 예상 수매량이 210만톤인 관계로 현재로선 수용능력이 부족하지만, 지역간 창고 이동작업을 추진하는 한편 가공용 쌀을 방출시키고, 막바지 판매량 늘리기에 나서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는 지난주에도 인근 자치단체에 미곡을 옮기는 작업을 벌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