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조용헌 원광대 불교대학원 교수 전주박물관서 강연

"재물 분배·적선 관련 이야기는 호남"

"내가 뼉다구 전문가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기질이 뭐였는가. 말뼉다구인지, 개뼉다구인지 알아본다 이 말이지. 명문가 기준이 뭐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데, 우선 인물이 나야 하고, 또 특출한 업적을 남겨야 하고, 봉사정신과 도덕성이 있어야지. 특히 적선을 많이 해야 돼. 고택을 유지하고 보존하고 있는 집은 일단 명문가일 확률이 높지."

 

24일 오후2시 국립전주박물관(관장 김영원)의 토요명사특강에 초청된 조용헌 원광대 불교대학원 교수. 지난 20년간 한국, 중국, 일본의 1000여곳 고택과 사찰을 현장 답사하며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를 쓰기도 했던 그는 '호남의 명문가'를 주제로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나갔다.

 

"태백산맥은 척추뼈. 그래서 영남은 척추뼈 기질이요. 그래서 수백 년간 나라의 중심을 잡아왔지. 호남은 들판이 많고, 먹을 것이 많아. 먹을 것과 배부름이 나왔지. 이게 가풍인 거야. 그래서 영남 명문가는 청빈과 강직한 일화가 많고, 호남 명문가는 남에게 뭣뭣을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많아."

 

이어 그는 일례로 안동 김계행의 보백당(寶白堂) 집안 편액에 '우리 집안에 보물이 있는데, 그 보물은 오로지 청백뿐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며 '청백이야말로 가장 큰 보물'로 여기는 자존심 때문에 강직과 청렴에 관한 일화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전주 한옥마을 내 고택인 학인당은 일제시대 호남 판소리의 중심지였다며 백낙중이 당시 내로라하는 명창인 임방울·박녹주·김연수·박초월·김소희 같은 스타들이 공연을 하도록 학인당을 내주었다는 이야기를 예를 들면서 호남은 재물의 분배와 적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안동을 제외한 영·호남 명문가들은 천민 자본주의에 휩싸여 돈 외에 긍지와 자존심으로 내세울 만한 명문가가 사라졌다며 1000년 고도를 이야기하는 전주는 문사철을 이야기하는 어른도 없어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