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별 하나 없더라. / 몸 속에 피 한 방울 돌지 않더라. / 숨쉴 수 없는 돌이 되었더라.' ('사람이 변하면' 중에서)
1979년 10·26 사태가 나고 세상이 시끄러울 때. 사는 일이 걱정스러워 신문에 발표한 한 편의 시 '사람'이 연작시의 시작이었다. 벌써 30년에 이르렀고 작품 수도 400편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에 관한 시를 쓴다.
'사람' 연작시집 「숙명」(문학사계)을 펴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김년균 시인(67). 그에게 '사람'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이상스럽게도 말을 줄여왔다. 어쩌면 누워 침뱉는 격이란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자주 이야기되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로소 '사람'은 '사람'답게 바로 잡힐 수 있다고 믿는 시인. 그는 "이 시를 쓸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시적 대상이 되어 준 '사람'에게 감사한다"고 말한다.
'문 밖에 나서면 돌밭뿐인 막다른 곳에서 / 넘어질 듯 부서질 듯 아슬아슬한 곳에서 /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작은 목숨 용케도 견디며 / 기어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동행' 중에서)
「숙명」에 실린 80편의 시 중 어느 것 하나 '사람'이란 제목을 달지 않았지만 한 편 한 편이 '사람'과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애정임을 알 수 있다.
"문학은 구원의 빛이다. 문학이 있음으로 하여, 인간의 심성이 아름답고 향기롭게 다듬어지고, 세상도 지혜롭고 평화롭게 발전한다. 그러한 문학과 함께 지낸 생애, 특별하지 않은가. 그러니 나에겐 문학이 숙명일 수밖에 없다."
그가 '사람'에 대한 시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문학이 상처받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치유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사람에 대한 좋은 점과 긍정적인 면보다 나쁜 점과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썼지만, 이것이 내게 맡겨진 운명인지도 모르겠다"는 시인은 앞으로는 사람의 좋은 점과 긍정적인 면을 더 바라보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김제가 고향인 그는 1972년 이동주 선생 추천으로 월간 「풀과별」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한국현대시인협회 부회장, 김동리기념사업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사람' 연작시집으로는 1997년 「아이에서 어른까지」를 시작으로 「숙명」까지 총 다섯권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