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사인훔치기 논란 - 박인환

전쟁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여러 요인중 하나가 정보의 보안성 여부다. 아군의 내부 정보와 통신내용을 상대에 노출시키고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없다. 정보 보안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만든게 암호였다. 상대가 어떠한 수단 방법을 동원해도 해독하지 못하는 암호를 만드는 것이 승리를 이끄는 기본조건이었다.

 

 스포츠 역시 승부를 겨루는 '아름다운 전쟁'인 만큼 암호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스포츠에서 비밀스런 암호인 사인(Sign)을 가장 많이 쓰는 종목이 야구다. 경기당 최대 1000번 까지 행해진다는 사인은 기본적으로 투수와 포수, 감독과 코치, 코치와 주자·타자 사이에서 다양하게 쓰여진다.

 

 야구 경기는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면서 시작하는 스포츠이지만 그 이전에 사인으로 시작해 사인으로 끝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선발투수가 첫 타자에게 공을 던지기전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고 투구 공의 구질과 코스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야구 경기에선 머리, 눈, 코, 입, 귀, 얼굴, 가슴, 어깨, 팔, 손, 엉덩이, 무릎등 머리에서 발끝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가 사인판으로 이용된다. 야구 경기장의 '제 2의 언어'인 사인은 자기 편끼리는 헷갈리지 않을 만큼 간단하면서 상대방은 쉽게 눈치채지 못하게 수많은 위장술로 덧칠된다. 그만큼 복잡해지는 것이다.

 

 지난달 끝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KIA 타이거즈에 패한 SK 와이번즈의 김성근감독이 지난 주말 한 방송에서 "KIA가 한국시리즈 내내 사인을 훔쳤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고 있다. 김감독에게 따라붙는 별칭이'야구의 신(神)'이라는 '야신(野神)'이다. 게다가 KIA의 조범현감독과는 고교시절 부터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맺은뒤 프로야구계에서도 여러 차례 제자와 스승관계로 만났다. 제자의 청출어람(靑出於藍)을 치하해주지는 못할 망정 잔칫상에 재를 뿌리는 격이다.

 

 국내 현역 감독중 가장 많은 사인을 만들어 사용한다는 김감독이 사인훔치기를 거론한다는 자체가 적절치 못한 처사로 보인다. 시리즈 3연속 우승 실패가 아쉽기는 하겠지만 1주일전 끝난 경기내용을 다시 꺼낸 것도 치졸하기 짝이 없다. 상대의 사인 해독에 대비하고 이를 역이용하는게 '야신'의 능력이 아닐까.

 

/박인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