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돌에 새긴 인간의 존재, 그리고 삶의 터전

이세덕 설치조각전 '혈의 기원' 9일까지 전주서신갤러리

'피는 물보다 진하다.'

 

9일까지 전주서신갤러리(관장 박혜경)에서 열리고 있는 조각가 이세덕씨의 설치 조각전'혈의 기원'의 근간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로 풀고, 그동안 작업해온 철 대신 돌로 깎고 다듬어 표현했다.

 

"경남 거창에 갔다가 간지석 돌무더기를 보고 저거다 싶었습니다. 철은 새기고, 용정하는 까다로운 작업을 해야 하지만, 돌은 정하고 망치만 있으면 뚝딱뚝딱할 수 있거든요."

 

간지석(터를 잡거나 축대를 쌓는데 쓰이는 돌)에 250여개의 지명과 150여개의 성씨를 새긴 돌 400여개가 전시됐다. 작가는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성씨와 삶의 터전을 이뤄온 지명은 과거에 뿌리를 두지만, 변화를 거듭하며 이어져 오기 때문에 미래를 지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좋은 돌을 고르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런데 워낙 비싸서요. 섬세한 미적 감각이 요구되는 작품을 구상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값싼 돌을 구했고, 틈 나는대로 작업했습니다. 미련하지 않으면 못하는 작업이죠."

 

남·북의 지명 2만7000개 중 250여개만 새겨놓은 상태. 빨간색 락카로 덧칠해 강렬하고 숭고한 이미지가 강조됐다. 전시장에 검은색 천을 깔아 그 위에 작품을 흩어놓는 방식을 취했다.

 

작가는 "검정은 두려움과 그리움, 삶과 죽음을 뜻하는 반면, 빨강은 분노와 열정의 색"이라며"빨강과 검정의 조화로 유한한 인간의 존재와 삶의 터전에 대한 애환을 승화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씨와 지명을 소재로 한 '혈의 기원'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군산 옥구 출신인 그는 현재 전북대 미술학과와 군산대 건축학과에 출강중이다.